그리스 정부의 일부 당국자들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의 현실화를 가정해 그리스 옛 통화인 드라크마화로 돌아가기 위한 ‘플랜 B’를 비밀리에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한 투자자 회의에 참석해 그리스 국민과 기업이 사용하는 비밀번호를 복사해 새 비밀번호를 발급하고, 유로화를 드라크마화로 환전할 수 있는 ‘병렬지불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음을 폭로했다고 블룸버그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바루파키스 전 장관이 이 같은 계획을 밝힌 이후, 그리스가 국제채권단의 긴축정책에 동의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플랜B’는 유야무야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대책에 참여했던 텍사스대의 제임스 K 갈브레이스 교수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염두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논의됐던 내용”이라며 “이 사안을 실행하기 위해 모인 워킹그룹이 그렉시트를 지지한다거나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드라크마화 복귀를 줄곧 강조했던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라크마화 복귀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당했더라도 연금과 공공부문 임금 지급을 가능하게 해줬을 것”이라며 “중앙은행 준비금을 써야 하는 주요 이유는 그리스 경제와 그리스 국민의 생존을 위한 것이며 이는 헌법이 규정한 모든 정부의 최우선 의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리스와 국제채권단이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이 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온 것이 악수(惡手)가 되는 것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채권단 대표들은 바루파키스 전 장관을 주축으로 한 ‘플랜B’ 보도가 나온 당일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으며 그리스 정부 관계자들과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했다.
여기에 IMF가 그리스 경제 회복 전망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이날 IMF는 유로존과의 연례협의(Article IV Consultation) 결과 보고서에서 그리스 사태를 유로존 성장의 역성장 요인으로 지목하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IMF는 유로존 경제에 대해서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기업·은행의 자산구조 훼손, 낮은 생산성 등을 이유로 유로존 경제의 “중기적 (성장) 전망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