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는 것이 일락이요,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게 없는 것이 이락이요, 천하의 재주 있는 사람을 모아 가르치는 것이 삼락이다.”[君子有三樂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
그런데 맹자는 첫 번째 즐거움을 언급하기 전에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세 가지 즐거움에 들어 있지 않다,”[而王天下不與存焉]는 말부터 한다. 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왜 이 말을 굳이 했을까? 그런 권력과 현세적 영화를 바라지 말라는 뜻을 이해하기 쉽게 한 말이 아닐까?
맹자가 생각하는 인간의 참된 즐거움과 보람의 기준은 매우 본질적이다. 부모형제의 무고가 인의의 충족이라면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한 생활은 인의의 실천이다. 나머지 한 가지 영재교육은 인의의 전파다. 인의예지의 본성을 밝히는 게 군자의 사명이며 즐거워하는 바라는 말이다.
세 가지 즐거움 중 첫 번째는 내가 바라는 대로 할 수 없다. 부모형제의 건강과 안녕은 누구나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세 번째 즐거움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도 교직 종사자라면 모를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교원단체는 흔히 삼락회(三樂會)라는 이름을 쓴다.
다른 두 가지와 달리 두 번째 즐거움, 불괴어천 부작어인(不愧於天 不怍於人)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바로 그 자세다. 정자(程子)는 이 부분에 대해 “사람이 능히 자기를 극복하면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아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확 퍼지니 그 즐거움을 알 만하다”고 언급했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