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를 떨치고 있는 일본 엔화의 강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엔화 강세는 지난주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융완화를 보류한 것을 계기로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일본을 ‘환율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목하며 견제구를 던졌으나 일본 정부는 환시 개입도 불사하는 등 엔고 진화에 우선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2일 오전(한국시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전날보다 1.19엔 내려 106.20엔을 기록했다. 이로써 엔화 가치는 달러에 대해 2014년 10월 이후 약 1년 반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가 시장 예상을 밑돈 데다 이튿날 발표된 미국 물가 지표도 부진을 보이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관측에서 엔을 사고 달러를 매도하는 움직임이 가파라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29일 ‘주요 교역 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통해 한국, 대만, 독일 등과 함께 일본을 환율 조작 여부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면서 엔화 강세, 달러 약세 추세를 부추겼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엔고가 다시 가속화한 상황에서 미국의 견제는 외환시장에 파란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미국이 자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음에도 이에 아랑곳없이 필요하다면 환시 개입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그는 1일 “투기가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필요에 따라 대응할 것이다. 미국 재무부 조치가 우리의 환율 대응을 제한하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이를 두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실상 아소 부총리가 엔 매도를 통한 시장 개입 방침도 불사할 뜻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소 재무상은 또 엔화 매도 개입 등의 대응이 G20(주요 20개국) 합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며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 가능성을 경계하는 미국 측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문제를 놓고 양국 간 ‘환율 갈등’이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베 신조 정부는 2013년 4월 대규모 금융완화를 통해 엔저-주가 상승 흐름을 유도했다. 엔화 가치 약세를 통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주가와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엔화 강세가 가속화하면 아베 정권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대규모 금융완화책은 물론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도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엔화 가치는 금융완화책을 도입하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월간 기준으로 5.1% 치솟았다. 올 들어서는 11% 넘게 급등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의 구두 개입에다 골든위크를 맞아 시장 참가자가 줄어 변동성이 낮아져 엔고 가속화가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