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묻는 말이 아니었다. 강한 질책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국무위원들이 건교부 장관과 행자부 장관을 쳐다봤다. 화물연대는 건교부 소관, 도시가 마비된 것은 행자부 소관,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빨리 대답을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두 장관은 서로에게 답을 미루는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건교부 장관!” 참다못한 대통령이 큰 소리로 불렀다. 이어 매서운 질책이 따랐다. 건교부 장관을 지칭했지만 사실상 질책은 여러 곳을 향하고 있었다. 특히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총리를 향해 무언의 질책을 하고 있었다. “도시 하나가 마비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이렇게 해서 여러 관련부처가 나섰고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8월, 다시 같은 문제가 일어났다. 대통령은 생각했다. ‘한 번은 특정 부처나 총리의 잘못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은 아니다. 잘못된 국정운영시스템이 그 원인일 수 있다.’ 대통령은 자신을 질책했다. 시스템의 문제는 결국 대통령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그 시스템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통령과 총리의 업무부터 재조정했다.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은 주요 개혁과제, 즉 ‘대통령 과제’를 주로 하는 것으로 했다. 일상적 국무나 현안은 총리에게 맡긴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국적 문화에서 이게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상황, 청와대 정책실을 현안까지 다루는 구도로 확대 개편했다.
그 다음 이 정책실로 하여금 총리를 지원하도록 했다. 총리 일에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총리의 뜻이 곧 청와대의 뜻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총리가 자신 있게 현안을 처리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처 간의 협의와 조정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분야별 ‘책임장관’을 두는가 하면, 위기관리 매뉴얼 작성을 독려하는 등 위기관리체제 강화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뼈아픈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였다.
잘했다는 게 아니다. 또 그렇게 해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최소한 그런 성찰은 있었고, 또 이를 통해 우리의 국정이 조금씩 나아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진해운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상황,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짐작하리라 믿는다. 늑장 대응에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 결정들, 정부는 이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기구가 되어 있다. 화물을 내리지도 싣지도 못하는 이 물류대란은 어떻게 하고, 크게는 15조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크고 작은 소송들은 다 어떡할 것인가?
이 정부에서는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부처도 보기 어렵다. 그러니 늘 늑장 대응에다 무책임한 결정들이다. 정책 결정의 주체들을 이 모양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조정과 협의를 위한 횡적 축도 완전히 무너져 있다. 그 결과 문제에 대한 고민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테면 사드 문제에는 군사적 논리만, 가계부채 문제에도 금융 논리만 횡행한다. 합리적인 결정이 이루어질 리 없고,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인 대안들이 마련될 리 없다. 한진해운 문제만 해도 물류 문제의 전후방 효과가 얼마나 큰지 모를 리 없었을 터, 어설픈 금융 논리 속에 이러한 상식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고도 국정운영 시스템이나 스타일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몰라서 그러는지, 알고서도 그러는지 그저 그 시스템 그대로, 그 스타일 그대로이다. 그 결과 국정은 방향과 동력을 잃고, 국민은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남은 임기가 1년 하고도 6개월, 고통의 세월로는 너무 길다. 지금이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성찰하라. 이런 사태를 겪고도 다시 그대로 지나가고, 그래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