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대식가(大食家)였다. 지난 2007년 어느 한 박물관에서 고구려, 고려, 조선시대 밥그릇과 요즘 쓰는 밥그릇에 각각 쌀을 담아 무게를 비교한 결과를 공개했다. 요즘 쓰이는 밥그릇에는 350g의 쌀이 들어간 반면 고구려시대 밥그릇을 채우는 데는 무려 1,300g이나 필요했다. 거의 네 배 가까운 분량이다. 또 고려시대 밥그릇에는 1,040g, 조선시대 밥그릇에는 690g의 쌀이 각각 들어갔다. 실제로 밥을 지을 때는 이보다 양이 적었겠지만, 여하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많은 양의 밥을 먹은 것이다. 고구려가 동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밥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즘 한국인의 밥심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대신 커피심, 빵심으로 산다고 해도 맞을 듯싶다. 하루에 커피는 두 잔 이상 마시면서도 밥은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이었다. 밥 한 공기에 쌀 120g 내외 정도로 보면 하루에 밥을 한 끼 반 정도밖에 먹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2.9kg이었는데, 이는 30년 전인 1985년의 128.1kg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쌀 소비가 줄어든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소득 증가에 다른 육류 소비 증가, 다양하고 풍부해진 먹을거리, 편리함을 추구하는 빵과 같은 간편식 선호 등등. 그런데 정말 아쉬운 것은 쌀에 대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소비가 줄어든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쌀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쌀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 ‘쌀밥이 당뇨병에 좋지 않다’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 쌀이 비만과 당뇨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쌀 소비가 급격히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비만과 당뇨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쌀이 비만과 당뇨병의 주원인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쌀의 주성분인 전분은 우리 몸에 많은 양을 저장시키지 않고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또한 다른 음식보다 혈중 포도당의 증가량이 적고 인슐린의 분비가 완만하다. 때문에 쌀밥을 적당히 먹으면 오히려 비만과 당뇨 예방에 효과적이다. 미국 듀크대 의대에서는 비만 참가자들에게 4주간 쌀 중심의 식단을 제공한 결과, 남성은 평균 13.6kg, 여성은 8.6kg 체중이 줄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쌀은 탄수화물을 비롯해 불포화지방산, 아미노산, 비타민B군, 무기질,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성분을 고루 갖추고 있다. 또한 우리는 밥을 먹을 때 김치 등 채소와 고기, 생선 등 여러가지 반찬을 함께 먹기 때문에 밥 중심의 한국형 식생활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칼로리 공급 비율이 매우 이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농촌진흥청과 미국 농업연구청이 공동으로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실험결과, 한식 섭취가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과 같은 생활습관병의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부터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올해도 벼농사가 풍년을 맞았다. 하지만 농업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쌀 소비 부진으로 쌀값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혹시라도 쌀에 대한 오해가 있어 밥을 외면했다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오해를 풀어보자. 그리고 오늘부터라도 맛있고 영양 풍부한 밥을 챙겨 먹어보자. 끼니때마다 뜨는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에 우리 몸은 더욱 건강해지고, 농업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