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장관은 이날 오전 9시 25분께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 전 장관은 당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건 이미 여러 차례 저희가 입장을 설명드렸던 걸로 안다"며 "짧은 시간에 다 설명드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합병 찬성을 지시했는지', '자신의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이 왜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삼성과 사전 접촉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특검에 가서 잘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어 '최순실 씨 지시를 받았는지', '아직도 합병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오후 2시 홍완선(60)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을 다시 불러 조사한다. 전날 홍 전 본부장을 상대로 밤샘 조사를 벌였지만,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조사할 부분이 남아 재차 소환하기로 했다. 수사상황에 따라 두 사람의 대질신문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 전 본부장은 전날 취재진에게 문 전 장관의 지시가 없었다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부인했다.
특검은 문 전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문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 전문위원회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의견을 내도록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문 전 장관은 합병을 위해 홍 전 본부장이 유임되도록 한 의심도 받는다. 문 전 장관은 지난달 24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청와대의 지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홍 전 본부장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생략하고, 투자심의위원회를 열어 논란을 빚었다.
특검이 문 전 장관을 통해 박 대통령이나 안종범(57) 전 청와대 수석과의 의사전달 구조를 밝혀내면 삼성과 박 대통령에 대한 혐의 추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은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미르·K스포츠 재단을 거치지 않고 최순실(60) 모녀에게 수백억 원을 직접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일찌감치 특검 수사 1순위 타깃으로 꼽혔다. 특검은 이날 최 씨와 안 전 수석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건강 상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힌 안 전 수석에게 오후에라도 출석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편 정관주(52)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도 이날 오전 9시 56분께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했다. 정 전 차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특정 인사에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리스트를 누구 지시로 만들었는지', '조윤선(5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지시였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서둘러 조사실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