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이해하기 ⓵] 형사재판과 다르다는 의미는?

입력 2017-02-03 18:36 수정 2017-02-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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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파면될 것인지, 결론은 언제쯤 나오는지 많이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헌법재판 자체가 일반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헌정사상 이번이 두 번째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심판이 진행된 지 2개월이 넘었습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지금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투데이 DB)
(이투데이 DB)

탄핵. 탄알 탄(彈)과 캐물을 핵(劾)이 합해진 말로, 잘못을 묻는다는 의미입니다. 헌법상 탄핵은 파면 여부를 따지기 위한 겁니다. 헌법 65조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국무위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원 판사 등도 국회가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의 경우에는 훨씬 요건이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 탄핵은 총 국회의원 과반 찬성만으로 심판을 시작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왜 대통령은 더 탄핵을 어렵게 만들어놓았을까요. 우리 헌법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인 동시에 국가원수로서 모든 국가 정책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기관이기 때문에 힘이 셉니다. 이런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마찬가지로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인정할 정도로 잘못이 있어야 한다는 게 헌법의 취지입니다. 반대로 해석하면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 자리가 장기간 공석인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이 사고나 다른 이유로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궐위시’에 2개월 내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임자도 70일~40일 전까지는 선출하도록 정했습니다. 헌법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통령 자리가 비더라도 그 상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다소 선거 과정이 급하게 진행되더라도 대통령이 궐위된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헌법이 정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탄핵심판은 박근혜 개인이 대통령직을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못지 않게 헌법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를 최대한 빨리 해소하는 '신속성'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재판인 셈입니다.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처럼 몇 년이 걸릴 수는 없는 게 대통령 탄핵심판입니다.

이러한 ‘신속성’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볼 것인가에서 헌법재판관들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의견 차이가 생깁니다. 이번 사건 주심은 강일원 재판관이 맡았습니다. 1985년 임관해 30여년 간 재판을 해온 판사 출신입니다. 소송절차에 관해 이론과 실무 경험을 오랫동안 쌓은 강 재판관은 “탄핵심판은 형사소송과 다르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이 발언은 강 재판관의 독자적인 의견이 아니라 9명의 재판관이 의논해 내린 결론입니다. 형사재판보다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 측은 빠른 결론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파면 결정이 나오면 대통령 신분을 벗어나고, 헌법상 보장된 ‘불소추 특권’을 누리지 못해 바로 구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형사재판처럼 일일이 혐의를 따져봐야 한다는 대통령 측 주장도 이런 맥락입니다.

국회가 주장하는 탄핵사유 중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설립해 기업으로부터 760억 원이 넘는 돈을 걷은 부분을 보겠습니다. 박 대통령 측도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돈을 걷었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린 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범죄라면 특히 뇌물 수수로 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게 대통령 측 입장입니다. 박 대통령 측 주장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재단 출연금을 낸 것이지,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최대한 물러서서 기업들이 겁을 먹고 돈을 냈더라도 이것은 검찰이 기소한대로 ‘직권남용’이지 뇌물수수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직권남용과 뇌물수수는 형량 차가 큽니다. 직권남용은 징역형이 5년 이하이고, 사안에 따라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뇌물수수는 액수에 따라 가중처벌될 경우 징역 10년 이상에 처해지는 중범죄입니다. 박 대통령 측이 이미 한차례 채택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다시 신청하면서 “뇌물죄 성립 여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통령 측은 재벌기업 총수들과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차은택 씨 등 주요 인물에 대한 검찰 조사 내용이 기록된 ‘조서’는 증거 가치가 없다고도 반복해서 주장합니다. 조서는 검찰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지, 심판정에 직접 불러 증인의 입을 통해 말을 듣기 전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처럼 관련 증인들을 실제로 불러 일일이 변론을 열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 측이 다시 불러달라고 신청한 증인은 15명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헌재는 일주일에 1~2차례 변론을 열었고, 한 변론에서 2~3명을 신문했습니다. 15명을 신문하려면 최소한 5번의 변론을 더 열어야 하고, 탄핵심판이 최소 3주는 지연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것도 증인들이 제때 나올 때를 전제로 한 것이고, 소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훨씬 더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 생각은 다릅니다. 강일원 재판관은 지난달 19일 열린 7차 변론기일에서 “이 재판에서 다루는 건 대통령에 대한 범죄행위 유무를 심판하는 게 아니고 국회의 탄핵소추가 정당한 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돈을 내도록 한 게 범죄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는 법원에서 다툴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행위가 대통령을 더 이상 못하게 할 중대한 법 위반인지를 판단하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 교사가 학부모와 불륜관계에 있던 사실이 적발돼 학교로부터 파면 징계를 받았습니다. 현행법상 간통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 사실 자체는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경우 다툼이 생기면 법원은 범죄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파면결정이 정당한지에 관해 판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 공무원의 파면 무효 소송과 헌법재판을 같이 비교할 것은 아닙니다만, ‘형사재판과 별개’라는 의미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증인을 일일이 다 부르지 않더라도 검찰조서가 변호사 입회 하에 정당하게 작성됐다면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필요한 증인 수는 줄어들고, 헌법재판소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늦어도 3월 초까지 결론을 내는 게 가능해집니다.

(사진=이동근 기자 foto@)
(사진=이동근 기자 foto@)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박 대통령 측의 미숙한 부분 대응도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 도중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통해 대기업 후원금을 걷은 것은 물론, 최순실 씨의 지인에게 특혜를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다만 ‘나쁜 뜻으로 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할 뿐입니다. 탄핵심판정에 나선 증인들도 최순실 씨가 추천한 인사를 장관급으로 임명한 사실을 진술했는데도 박 대통령 측은 이를 부정하지 못하고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측의 설명을 바라는 것은 ‘어떤 행위가 정당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실제 그 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로 하여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자금을 내도록 한 사실이 없다고 다툰다면 모를까, 그런 사실 자체를 인정한다면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는 재판관들이 알아서 결론을 내겠다는 겁니다. 강일원 재판관은 지난달 10일 3차 변론에서도 “형사재판이라면 무죄가 추정되기 때문에 혐의사실을 부인하면 되지만, 탄핵심판에서는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사실이 아니고를 정확하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선 검사가 범죄행위를 일일이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의심이 가도 무죄로 봐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만, 탄핵심판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령 ‘세월호 7시간 의혹’도 형사재판이라면 그 시간에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검찰이 일방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하는 데만 성공하면 유죄판결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무얼 했는지 박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설명할 책임을 집니다. 만약 이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결론이 날 때 불이익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과 최순실 씨가 어느 범위에서 언제까지 도움을 줬는지 박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고 수차례 요구했습니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국회 탄핵소추 사유가 정당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재판관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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