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결정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이 걸리면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닐 고서치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제임스 로바트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 판사는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한시적으로 금지한 대통령 행정명령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미 국무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취소됐던 비자 6만여 개를 원상 회복시켰고, 국토안보부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를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미 법무부는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며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그러나 연방 항소법원은 법무부의 긴급 요청을 기각, 이에 따라 미 전역에서 반이민 행정명령을 잠정 중단시킨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은 상급법원의 추가 판단이 있을 때까지 효력을 이어가게 됐다.
일각에서는 반이민 행정명령의 운명이 연방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때도 민주, 공화 양당이 첨예하게 맞붙은 이슈에 대해선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말 대법원이 내린 ‘오바마케어’ 합법화,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고서치 지명자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반이민 행정명령 문제로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서치는 현재 콜로라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현재 보수와 진보 4 대 4 구도인 대법원의 이념 지형을 단숨에 보수 우위로 바꿀 수 있는 핵심적 인물이다. 고서치 지명자가 대법원에 합류하고, 반이민 행정명령 문제가 대법원까지 간다면 보수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반이민 행정명령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민주당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까지 동원하겠다는 구상이다. 필리버스터는 의원 누구나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상원에서만 허용된다.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려면 전체 100명인 상원의원 중에서 60명이 동의해야 하는데 현재 52석인 공화당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에 이번 사안에 한정해 ‘핵 옵션(nuclear option)’을 동원해 의결정족수를 ‘찬성 60표’에서 ‘단순 과반(51표)’으로 낮추라고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원 법사위 소속인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 문제가 대법원에서 판결 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