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 농촌에서 관행으로 이뤄지는 논·밭두렁 태우기가 득보다 실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해로운 곤충 방제보다 이로운 곤충의 피해가 8배 많았다. 생태환경과 천적류 복원도 늦어지고 산불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위치한 논·밭두렁 3㎡의 면적에 서식하는 곤충의 밀도를 조사한 결과 총 8164마리가 발견됐다.
이 중 애멸구·벼물바구미·끝동매미충 등 해충은 908마리인 반면, 거미와 톡톡이 등 익충은 7256마리로 조사됐다. 이에 논·밭두렁을 태우면 해충과 익충이 한꺼번에 죽어 해충류는 11% 방제되지만, 농사에 도움을 주는 천적 곤충류는 89%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벼물바구미·애멸구와 같은 해충은 야산의 땅속과 논밭두렁 잡초 흙속 뿌리에 붙어 월동하기 때문에 불을 놓아도 잘 죽지 않았다. 논두렁에 서식하는 거미와 톡톡이 등 익충은 잘 타죽었다.
또 논·밭두렁은 태운 지 60일이 지나야 식생과 동물상이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해 75일이 지난 뒤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때문에 자연생태계의 교란과 파괴로 인한 2차 피해도 우려된다는 게 농진청 설명이다.
정준용 농진청 재해대응과장은 “해충이나 천적 밀도를 회복한 개체들은 모두 주변으로부터 확산돼 온 것으로 추정되며, 만일 불태운 면적이 넓을 경우 곤충류의 밀도 회복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날개가 없는 거미류는 날개가 있는 해충류보다 밀도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밭두렁 태우기는 산불 위험성도 높인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3935건으로 연평균 394건이 발생하고 있다.
산불은 주로 날씨가 건조한 봄철인 3∼5월에 50% 이상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피해 면적도 396ha로 82%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산불의 원인으로는 입산자 실화가 3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논·밭두렁과 쓰레기 소각이 31%로 뒤를 이었다. 담뱃불 등 기타도 31%를 차지했다.
논·밭두렁 태우기로 인한 산불 피해는 2010년 72건, 40ha에서 2015년 185건, 168ha로 급증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도 건조한 날씨와 봄 가뭄으로 발생한 142건의 산불 중 51건(36%)은 논·밭두렁과 쓰레기를 태우다가 벌어졌다.
농진청은 논·밭두렁 태우기 대신 작물의 생육기인 6월 이후 해충류 전용 약제를 처리하는 게 병충해 방제 효과가 높다고 권장했다. 해충류에 잘 듣는 약효가 천적류와 달라 선택적으로 해충을 죽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 과장은 “논두렁에는 해충류보다 천적류가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논두렁 태우기는 해충 방제 효과가 거의 없다”며 “논두렁 태우기 후 생물상 복원도 해충류보다 천적류의 복원이 늦어져 해충 방제에 역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농가들의 봄철 논·밭두렁 태우기 자제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