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당시에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서로 웃자고 하는 농담이었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장에는 그동안 종종 교수 출신이 임명됐지만, 적어도 김상조 교수와 같은 시민단체 출신의 ‘반골(反骨)’은 아니었다.
데스크가 기억하는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물이다. 30년 전에나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는 강의하면서 책상에 걸터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어지러운 시국에 대한 그만의 냉소적인 해석과 질타는 어린 대학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 ‘반골’ 교수가 ‘삼성 저격수’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정부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된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금융업계도 초긴장 상태이다. 민정수석이나 정책실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주요 권력기관의 수장에 비관료 출신이 연이어 등용되면서 금융회사를 총괄하는 금융위원장도 민간 출신이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어서이다. 특히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이 거론되면서 일부에선 ‘경기(驚氣)’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당시 주진형 사장이 증권사 개혁을 추진하다가 한화그룹의 제지를 받고 중도에 사임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금융업계는 그의 개혁을 한 개인의 튀는 행동으로 치부해 왔다. 최순실 사태의 증인으로 나온 주 전 사장의 발언에 대해 ‘사이다’와 같이 시원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편에선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듯한 어법과 행동은 다소 감정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왔다. 주 전 사장이 금융위원장이 되면 한화그룹의 금융계열사에 보복(?)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민간 출신이 정부로 진출해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 범위를 좁혀 금융 분야에선 특히 더 그렇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때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금융위원장에 발탁된 A 씨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10개월 만에 교체됐다. 그 이후로는 예전대로 행시 출신들이 금융위원장을 꿰찼다.
당시 A 위원장과 B 금융위 간부 간 일화는 유명하다. 투자은행 출신인 A 위원장은 투자은행 감독관 출신인 B 간부 대신 다른 간부를 등용해 개혁을 추진했다. B 간부를 한직(閑職)으로 이동시킨 데 이어, 어느 날 산하기관장으로 내려갈 것을 권고했다. 발끈한 B 간부, 그는 위원장을 찾아가 직무실 문을 잠그고 “당신이 무엇인데 나에게 이러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B 간부는 좌천은커녕 나중에 차관으로 승진했다. 서로 위치가 바뀌었음에도 기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안종범 전 수석과의 인연으로 ‘금융 황태자’로 불리며 관가에 입성한 한 인사도 주변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사실 홀로 민간 출신으로 공정위나 금융위와 같은 권력기관에 들어오는 것은 혼자 말 타고 적진에 뛰어드는 ‘단기필마’와 같은 격이다.
권력을 가진 정부 조직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등 특유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상황에서 들어오면 시쳇말로 시간이 갈수록 ‘왕따’를 당하게 된다. 관료들의 조직력은 개별이 아니라 뭉쳤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외부에선 도저히 정체를 알 수가 없고 들어가서야 체험하게 된다. 아무리 독한 마음으로 개혁하려 해도 실무자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한다.
정권 초기에 매번 민간 출신이 발탁됐다가 결국 중·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관료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이런 한계 때문이다.
미국에선 월가 출신이 재무장관에 임명되는 것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에서 감세, 환율 정책 등의 현안을 다루는 재무장관인 스티븐 므누신은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이런 민간 출신을 영입할 때 그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전문가를 동시에 발탁한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 수석 투자가인 짐 도노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출신의 저스틴 무지니히 등이 므누신 장관을 도울 차관 등에 검토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개혁은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