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비난을 감수하고 195개국이 참여한 지구 온난화 대책의 국제 틀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가 파리협정을 탈퇴한 결정적 이유는 탈퇴 1주일 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관계자들의 증언을 인용해, 트럼프가 G7 정상회의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정상들과 첨예하게 격돌, 그로 인해 국제 공조보다 고립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당시 G7 정상회의는 트럼프가 지각하는 바람에 환영행사가 10분 지연되는 등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상황이 더 악화한 건 시리아 정세와 북한 등을 둘러싼 정치 토론 때였다. 회의실에는 정상들과 셰르파만 참석하고, 수행단은 다른 방에서 영상을 통해 정상들의 토론을 지켜보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에는 토론 도중 영상의 음성이 갑자기 끊기는 이례적인 사태가 빚어졌다.
정상회담에서는 민감한 이야기가 오갈 때 외부로 나가는 음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음성이 중단된 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가 G8을 탈퇴한 직후 열린 2014년 브뤼셀 정상회의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처음 참석한 정상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격론이 오갔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쟁점 중 하나는 시리아 정세를 둘러싸고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유럽과 미국의 의견이 충돌했다.
이어진 무역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정상들간의 토론이 더욱 달아올랐다. 트럼프는 “호혜적인 무역이 중요하다. 상대국의 관세가 30%라면 미국도 30%로 끌어 올리겠다”고 보호주의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에 참다 못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대미 흑자는 우리 제품의 품질이 좋다는 증거”라며 트럼프의 비판에 반박했다.
긴장감이 고조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서 “보호와 보호주의는 다르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권의 보호는 어느 나라에서든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확보”라며 유럽과 미국 간 중재 역할을 자처했다.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트럼프를 어떻게든 납득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파리협정을 둘러싼 논의에서 트럼프의 고립은 더욱 선명해졌다. 탈퇴를 만류하는 유럽 정상들에다 아베 총리까지 가세해 “환경 문제는 고용을 창출시킨다. 테슬라가 그렇다.”며 설득했지만 트럼프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당시 동행했던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가 도중에 귀국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며 당시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각국 정상이 헤드폰을 끼고 동시 통역을 통해 대화하고 있는데, 트럼프만 헤드폰을 끼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야외에서 각국 정상들이 걸어서 이동할 때 트럼프만 혼자 카트로 이동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G7 정상회의 후 의장국 이탈리아의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는 트럼프의 아마추어 외교를 공개적으로 꼬집었다. 메르켈 총리도 “다른 나라를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주일 뒤인 1일 세계에 보란 듯이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