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는 지난 2분기에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20.8%로, 19.9%를 기록한 레노버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리서치업체 가트너 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HP의 깜짝 선전은 세계 PC시장이 쇠퇴를 지속하는 와중에 이룬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전 세계 PC 판매는 지난 2분기에 전년보다 4.3% 감소했다. 일부 부품이 공급부족 현상을 나타내면서 PC 전체 가격이 오른 것이 판매 감소의 주원인이라고 가트너는 설명했다. 그러나 HP는 판매가 전년보다 3.3% 늘어난 1270만 대로, 5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으나 레노버는 8.4% 줄었다. 부품 비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영향을 극복한 HP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난 1분기에는 HP와 레노버 시장점유율이 사실상 같았다고 가트너는 덧붙였다.
다른 리서치업체 IDC의 조사에서도 HP는 6.2%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하며 점유율이 22.8%로, 20.5%에 그친 레노버를 웃돌았다. IDC는 구글 운영체제(OS)를 채택한 노트북인 크롬북을 판매 수치에 포함시켜 가트너와 수치가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론 커플린 HP 글로벌 퍼스널 시스템 사업부 사장은 “세계 1위가 되는 것이 명확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수익을 희생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대신 게임과 컨버터블 랩톱 등 이익을 낼 수 있는 부문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1년 구 HP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던 멕 휘트먼이 2014년 회사를 기업고객 중심의 HP엔터프라이즈(HPE)와 PC·프린터의 HP Inc. 등 2개 회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HP가 이렇게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만해도 업계에서는 휘트먼이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첨단사업을 가져가고 저성장 사업으로 분류된 HP는 아예 버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PC사업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렸기 때문. 실제로 휘트먼은 분사 이후 HPE의 CEO를 계속 맡고 있다.
그러나 분사 후 HP는 전사적으로 감원을 포함한 철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절감한 비용이 연간 20억 달러(약 2조2760억 원)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연간 12억 달러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전혀 삭감하지 않았다. 디온 웨이슬러 HP CEO는 “우리가 제조업 기업인 이상 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는 그 순간 미래는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대적인 제품 이미지 개선에도 착수했다. 스펙이나 가격은 좋지만 크고 디자인도 투박해 소유하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밀레니엄 세대 직원을 제품 매니저로 발탁했다. 또 자동차나 가전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산업 디자이너를 적극적으로 외부에서 수혈하고 그들에게 더 큰 권한도 맡겼다. 그 결과 지난해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HP 제품에 대한 평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경쟁사들이 PC사업을 축소하는 것도 HP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최대 라이벌인 레노버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시장을 넘보다가 실패하고 다시 PC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델은 개인용 PC보다 기업고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전자도 PC가 주력사업은 아니다.
프린터 부문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복합기 분야에 강점을 지닌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을 인수했다. 당시 인수에 대해 웨이슬러 CEO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이사회 멤버들이 정말 순식간에 결정했다”며 “다양한 IT 관련 사업을 안고 있었던 이전 HP 시대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속도로 우리는 움직였다”고 회고했다.
잉크젯 프린터로 쌓은 노하우를 살려 3D 프린터로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3D 프린터 개발에는 잉크젯으로 축적했던 약 5000개의 특허 기술이 투입됐다. HP는 현재 기존 업무용 3D 프린터에 비해 생산속도는 무려 10배 빠르고 운영 비용은 절반 수준인 생산라인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