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에 4등급 허리케인이 강타한 것은 13년 만으로 하비는 2005년 18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카트리나(3등급)보다 인명피해가 크지는 않다. 문제는 폭우다. 허리케인이 열대폭풍으로 바뀌면서 풍속은 떨어졌지만 물 폭탄을 머금고 있어 엄청난 규모의 비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국립기상국은 이날 하비가 텍사스에서 루이지애나 주로 이동하고 있으며 휴스턴을 포함해 하비 이동경로 지역에 50인치(1270mm)의 비가 더 내릴 수 있다고 예보했다. 이미 휴스턴 인근 지역에는 40인치(1016mm)에 달하는 비가 내렸다.
기록적인 홍수에 도시 기반시설은 물론 정유시설 같은 산업단지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하비의 직·간접적 경제적 영향이 400억 달러(약 45조원) 이상, 직접적 손실은 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텍사스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심장부라는 점에서 미국 경제는 물론 원유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 정제시설의 45% 이상이 멕시코만 연안에 있다. 미국 당국은 텍사스 정제시설의 85%가량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전체 원유 생산의 4분의 1도 멕시코만 연안이 차지한다.
미국 최대 수출입 기지 중 하나인 휴스턴이 물 폭탄을 맞으면서 미국 교역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컨설팅업체 RSM의 조셉 브루수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하비 여파에 항구가 정상 운항이 불가능해지면서 밀과 콩 등 농산물 출하가 지연돼 식품 가격이 오르고 휘발유 가격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하비 여파로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약 10% 오를 것이며 향후 2주 내로 텍사스 지역에서 20~30%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9월물 휘발유 가격은 전일 대비 갤런당(약 3.8ℓ) 2.7% 뛴 1.71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4월 17일 이후 최고가다.
미국 일부 지역에 일어난 자연재해이지만 그 피해는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브루수엘라스 이코노미스트는 연간 경제활동 규모가 5000억 달러에 달하는 휴스턴을 중심으로 이 일대 산업시설이 마비되면서 미국 전체 경제성장이 0.1%포인트 둔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비가 이웃지역인 루이지애나로 이동하며 폭우가 계속되면서 피해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JP모건체이스는 보험사들의 피해보상액이 100억~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경제 대통령’을 자처했던 트럼프가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간 백인 우월주의 단체 유혈사태와 관련해 ‘양비론 발언’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리더십을 가늠하는 심판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허리케인 하비를 재난으로 선포, 국토안보부에 허리케인 방재를 위한 긴급 지시를 내리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에게 전화를 걸어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텍사스를 방문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비가 텍사스에 상륙하기 전 걸프만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과 관련해 기자들 앞에서 텍사스 시민들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안일한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운을 빈다”는 말이 구설에 오르자 자신의 트위터에 하비에 대한 정부기관의 보고 받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등 재해 대응에 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