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 디지털 혁명의 바람이 일고 있다. 올해로 아세안이 설립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고도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아세안은 세계 7위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 블록으로 부상했으며 이런 성장궤도가 지속하면서 시민 삶의 수준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IT 기술이 아세안 각국의 경제와 산업에 다각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향후 50년 새 성장동력원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12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분석했다.
SCMP는 디지털 혁명이 신흥국의 경제와 산업 전반을 바꾼 극적 사례로 중국을 들었다. 이전 세대보다 풍요로우면서 기술에도 밝은 젊은층의 등장과 함께 중국에서 온라인과 모바일 혁신이 일어났다. 2003년만 해도 중국에서 전자상거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이커머스 시장으로 도약한 상태다. 텐센트의 메시징 앱 위챗은 불과 2011년 시작됐으나 이제 9억6300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자랑하고 있다. 또 단순한 메시지 전송을 넘어 게임과 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아세안이 중국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문화와 언어, 정치 시스템은 물론 경제적 풍요로움이나 인프라 발전 정도, 더 나아가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보급률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지역은 중국에서 이미 목격했던 디지털 혁명 잠재력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고 SCMP는 강조했다.
인구와 거시경제적인 측면 등을 살펴보면 아세안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아세안 인구는 현재 6억3000만 명으로 위챗 사용자 수보다 적다. 그러나 앞으로 15년간 아세안에는 독일 인구의 1.5배에 달하는 약 1억2000만 명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절반이 25세 미만인 필리핀과 그 비율이 40%를 넘는 인도네시아 등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것도 디지털 혁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디지털 혁명을 이끈 것은 이미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SCMP는 강조했다.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는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세안에서도 캄보디아와 미얀마 라오스처럼 이제 막 성장궤도에 오른 국가들은 연평균 7%가 넘는 성장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1억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 인구대국들도 5~6%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주민 가처분 소득도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오는 2025년에는 중산층이 1억2500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0년의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인터넷과 모바일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아세안의 젊은층은 하루 24시간 온라인으로 친구와 채팅하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며 송금과 지불, 개인대출 등 각종 금융서비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쉽고 안전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SCMP는 강조했다.
올해 1분기 아시아·태평양은 전 세계 전자상거래 매출의 40%를 차지했으나 그 대부분은 동남아시아가 아닌 중국과 일본, 한국, 호주, 인도에서 이뤄졌다. 또 현재 아세안에서는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때에도 온라인 결제보다는 제품을 받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관행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결제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아세안이 디지털 도구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HSBC홀딩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주택 구매자의 약 4분의 1이 매입에 앞서 온라인으로 검색했다. 또 4분의 3 이상은 온라인을 통해 주택 매입에 필요한 대출 등을 알아봤다.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이 아세안의 디지털 혁명에 주목하는 것도 당연하다. 태국의 핀테크 스타트업인 오미세는 이미 5000만 달러(약 564억 원)의 투자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은 7월 동남아에서 우버의 최대 경쟁사인 그랩에 총 20억 달러를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