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프로그램이나 ‘예능’이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연찮게’라는 말이 적잖이 나온다. “길을 가다가 우연찮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고 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실지 내용은 ‘우연히 만났다’이다. ‘우연히’라고 해야 할 말을 완전히 잘못 사용하여 ‘우연찮게’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은 한자로 ‘偶然’이라고 쓴다. ‘偶’는 원래 인형, 허수아비라는 뜻이었다. ‘禺’는 원숭이를 형상화한 글자로 ‘긴꼬리원숭이 우’라고 훈독하는데 긴꼬리원숭이는 원숭이 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런 원숭이를 나타내는 ‘禺’에 ‘사람인(人)’을 더하여 ‘偶’가 만들어졌으니 ‘偶’는 당연히 사람을 꼭 닮은 인형 혹은 허수아비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인형이나 허수아비는 어떤 용도로든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서 만든다. 즉 사람의 ‘짝’으로서 부분적으로라도 ‘사람 역할’을 하게 할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짝’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되었는데 ‘배우자(配偶者)’의 ‘偶’가 바로 그런 뜻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짝’은 결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만나는 것이 바로 짝이다. 이에 ‘偶’는 ‘뜻하지 않게’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然’은 ‘그러할 연’이라고 훈독하는 글자인데 명사나 동사를 부사나 형용사의 역할을 하도록 해주는 글자이다. ‘自然’은 ‘自(자신)’라는 명사에 ‘然’이 붙어서 ‘스스로 그러하게’라는 의미, 즉 ‘자연히’라는 부사가 되었고, ‘肅(엄숙)’이라는 추상명사에 ‘然’을 붙이면 ‘숙연히’라는 부사가 된다.
우연(偶然)도 이미 ‘偶’가 가진 ‘뜻하지 않게’라는 의미를 부사로 정착시키기 위해 ‘然’을 붙여 ‘우연히’라는 말이 통용하게 된 것이다. ‘우연찮게’는 ‘우연치 않게’, 즉 ‘우연하지 않게’라는 뜻이니 우연의 정반대말임을 알고서 오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