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식재산권 분쟁 건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할 우리 정부의 대응력은 무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력산업의 지식재산 경쟁력을 뒷받침할 정부의 지원책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6일 정부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기업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특허침해 피소 건수는 1300건을 돌파했다. 반면 한국 기업이 제소한 건수는 66건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의 주력산업인 휴대폰·가전제품·자동차·반도체 분야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산 제품을 견제하는 미국 내 경쟁기업의 특허분쟁 공격이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정유섭 의원(자유한국당)의 2017년 국정감사 분석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올 7월까지 국내 기업이 미국 기업으로부터 특허침해 피소를 당한 1304건 중 87.0%가 주력산업군을 보유한 대기업에 집중됐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가 582건으로 가장 많은 소송을 기록했다. 그다음으로는 LG전자 356건, 팬텍 88건, 현대자동차 83건, 기아자동차 44건, SK하이닉스 15건, LG디스플레이 12건 등이다.
현행 우리 정부의 지재권 보호 장치는 중소기업에 편중돼 있다. 이에 업계는 전체 기업의 지재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5년 7개월간 기업들의 국제적 지재권 분쟁 중 중견과 중소기업의 경우는 각각 7.9%, 5.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행 안전장치는 심판·소송 비용 지원, 소송보험 지원, 맞춤형 표준특허 전략 지원, 지식재산 분쟁대응 컨설팅 등 중소·중견기업만 지원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기업은 특허분쟁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으며, 이는 수출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현황을 보면, 국내 대기업 지재권 무역수지는 2010년 통계 편제부터 꾸준히 적자를 달리고 있다.
그나마 올 상반기 잠정 통계로는 17년 만에 3억3000만 달러 흑자를 겨우 달성했으나 무역장벽 고조에 따른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되는 추세다.
허원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전체 특허소송 건수 중 피소송 건수의 비율이 평균 85.7%에 육박해 중소기업보다 5.5%포인트 크다. 사업 추진 규모의 특성상 소송비용도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고 있어 기업들이 지식재산 경쟁력을 확보할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은 중기보다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탄탄한 만큼 중소기업을 우선 지원할 수밖에 없다”며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을 보더라도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지재권 분쟁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천문학적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될 경우 국가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어 민관 합동으로 대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