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이야기] 名家의 전통과 교훈

입력 2017-11-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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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100년이 넘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면 수염을 가슴까지 길게 기른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한 팀에서는 수염을 길게 기른 선수를 볼 수 없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우승을 스물일곱 번이나 한 뉴욕 양키스이다. 매끈한 얼굴, 세로 줄무늬 유니폼은 곧 양키스를 상징한다.

역시 100년이 넘는 실용적인 만년필의 역사에도 이와 같은 전통과 상징이 있다. 미국의 워터맨, 파커, 쉐퍼, 독일의 몽블랑과 펠리칸 등은 모두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실용적인 만년필은 미국 뉴욕에서 보험업을 하던 워터맨이 모세관현상(毛細管現象)을 이용해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쓸 수 있는 만년필을 만들면서 시작했다.

예전의 만년필은 바로 써지지 않았고 잉크가 새는 것이 다반사(茶飯事)라 갖고 다니기 힘들었다. 셔츠에 꽂을 수 있게 클립을 장착(裝着)한 것, 잉크가 새지 않게 돌려 잠그는 뚜껑을 상용(商用)화한 것도 워터맨이다. 이런 혁신 덕분에 워터맨은 1930년대 초반까지 그 많은 회사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혁신에 집중하느라 전통을 축적할 수 없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더 이상의 혁신이 워터맨에서 나오지 않아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다. 1954년엔 사업을 시작한 곳 미국에선 문을 닫았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생산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이 회사를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은 가운데가 비어 있는 V모양의 클립이다. V클립은 회사가 미국에서 문을 닫을 무렵 나왔다. 1953년 자동차 회사 GM의 산업디자이너이며 ‘콘셉트 카의 아버지’라 불리는 할리 얼(Harley Earl)이 디자인 펜 C/F에 장착한 클립이다. 좀 더 일찍 워터맨을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상징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들은 욕처럼 뭔가 기억에 팍 꽂히는 불멸의 상징은 만년필에 꼭 있어야 한다.

▲화살 클립이 보이는 파커51 광고(1946년).
▲화살 클립이 보이는 파커51 광고(1946년).

만년필 세계엔 절대 없어지지 않는 2개의 불멸(不滅)의 상징이 있다. 하나는 파커의 화살클립, 다른 하나는 몽블랑의 화이트스타이다. 셔츠 위에 꽂혀 있는 화살은 곧 파커 만년필이 이었다. 이런 화살 클립이 처음부터 파커에 장착된 것은 아니다. 1888년에 설립된 파커는 한 40년 동안 2등, 3등이었다. 성공작이 나오면 따라했다. 하지만 바로 따라하지 않고 좀 더 개선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기술을 이렇게 축적했다.

때가 왔을 때 파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21년 빨간색 몸통에 위와 아래가 검정인 컬러 만년필의 시작인 듀오폴드로 시장에서 자신감을 얻자마자 1930년대 초 화살 모양의 클립이 장착된 만년필을 내놓는다. 이 만년필은 크게 성공했고 만년필 세계의 주도권(主導權)은 역시 파커로 옮겨졌다. 미다스의 손처럼 만지는 것마다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성공이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1954년에 내놓은 누르면 딸깍 하고 심이 나오는 볼펜 조터는 지금까지 수억 개가 팔려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만년필 회사 파커보다는 볼펜 회사로 인식되는 성공이었다. 잘 팔리는 것에만 집중하다 생긴 현상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는 것이다. 갈빗집은 갈비가 맛있어야 하지 냉면이 맛 좋다 하여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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