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주택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알아보기 위해 수급 상황을 들여다 보곤한다. 대개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는 반면 수요가 넘치면 집값은 오른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적인 논리도 맞지 않는 때가 제법 있다. 수요의 가변성 때문이다. 수요는 공급량과 달리 변화 무쌍하다. 가구수·철거 주택·경제 여건 등과 같은 여러 변수를 따져 적정 수요를 추산해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런 계산 수치는 별 의미가 없다. 수요량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꾸 변해서 그렇다. 자금력이나 가족 수를 봐서 안정적인 내 집을 장만할 법도 한데 전세를 선택한다. 반대로 집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덜컹 구매 수요로 돌변하는 일도 벌어진다. 경기 상황에 따라 수요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얘기다. 주택시장이 달아오를 때는 가수요가 넘쳐나고 불경기에는 확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적정 수요를 산출해 여기에 공급량을 맞추는 정통적인 주택수급 정책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던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이 치솟은 배경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정부가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내놓았는데도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세를 탔다. 시장은 정부 정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집을 산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상투를 잡은 순진한 투자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부동산 투자가 주업인 사람은 지난해 8.2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무렵에 서둘러 주택을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 분위기가 잔뜩 부풀려 있을 때 팔고 나왔을 것이라는 소리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매매량이 별로 줄지 않았다는 게 이를 방증해준다. 정책 방향이나 시장 여건을 보면 구매 수요가 줄어야 정상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수급 논리로는 시장 흐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전세가격 동향을 보고 집값의 향방을 가늠하는 쪽이 더 정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집값은 맥을 못 춘다. 전세수요가 많다는 것은 구매 시장이 위축됐다는 얘기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적으면 집값은 떨어지게 돼 있고 가격 하락 시점에는 누가 집을 사려고 하겠느냐 말이다.
반대로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 좀 시간이 지나면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판다는 시각이
강하다. 전세가격이 집값을 밀어 올린다는 의미다. 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으면 매매가격이 오를 공산이 크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전세를
살던 사람도 조금만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구매 수요를 증가시켜 집값을 부추기는 상황을 만든다. 2015년 이후 몇 년간 벌어진 현상은 이런 흐름 속에서 형성됐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전국 평균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해 12월부터 하락 국면으로 돌아섰고 하락 폭도 점차 커지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매매가는 오름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상승세다. 앞으로 하락이 예상되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2월 중순부터 하락세로 바뀌었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2월 둘째 주(12일) 보합세에서 셋째 주와 넷째 주는 각각 -0.02% 떨어졌고 3월 첫째 주(5일)에는 -0.06%로 낙폭이 커졌다. 이는 전국 평균 수치 -0.07%와 비슷한 수준이다. 앞으로 몇 달을 더 지켜봐야 확실한 흐름을 파악알 수 있겠으나 지금 분위기로 봐서 하락세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상승세를 주도했던 호재가 사라져서 그렇다. 집값이 안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지면 전세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이는 구매 수요를 감퇴시켜 매매시장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진단이다. 떨어질 줄 모르던 서울 아파트값도 조만간 하락세를 면하기 어려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