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분석·공개하고,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을 문제 삼은 데 대해 재계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공정위는 사각지대에서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법 개정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재계는 규제 대상이 아닌 기업 간 내부거래는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 사각지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10일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법을 지키고 있는데도 ‘규제 사각지대’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몰아붙이고 있다”며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높아져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사익편취 규제 대상 지분율 강화 이후에 거기에 맞게 지분율을 조정해도 또 규제 사각지대라고 하면 기업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경총은 공정거래법이 규정하고 있는 총수 일가 사익 편취행위 기준도 모호한 상황에서 규제 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것은 정상적인 계열사 간 거래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개정안에서 규정한 사익편취 유형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등으로 구체적인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 법에서 계속 등장하는 ‘상당히’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기업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대상을 현재 대주주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 30% 이상인 상장계열사(비상장은 2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강화했다. 또 계열사가 50% 넘게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으로 추가됐다. 이에 따라 야구단을 운영하는 LG스포츠와 두산베어스, 축구단을 운영하는 GS스포츠 등 스포츠 사업을 운영하는 비상장사 역시 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대기업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선제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나서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물류계열사 판토스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현재 판토스에 대한 구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9.9%로 개정안이 통과돼도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번에 전량 처분했다.
SK그룹은 계열사 SK해운을 한앤코에 매각하기로 했다. 해운업 불황 등의 이유도 있지만,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매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한다. 공정위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SK해운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또 총수일가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지난달 SK D&D 보유지분 전량을 사모펀드에 넘기기로 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무차별적인 규제 강화는 외국계 헤지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