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과 장년층 간 세대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지지 정당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최근에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정년연장과 맞물려 청년 구직자들과 은퇴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말 그대로 2030대 5060의 세대 전쟁이다.
◇ 국민 10명 중 6명 “세대갈등 심각하다” =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62.2%는 세대 간의 갈등을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2016년 전국 성인 3669명을 상대로 사회갈등에 대해 인식 조사를 한 결과다. 2014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56.2%가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한 것과 비교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세대 간 갈등은 세계 공통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세대 간 이질성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너무 짧은 주기로 거대한 정치·사회변동이 반복되다 보니 동시대인 사이에 상이한 역사 해석과 다른 가치체계들이 공존하지만 서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갖고 있는 사회적 경험의 차이가 크다 보니 청년층과 장·노년층이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지 못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2030세대는 기성세대가 청년층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대학원생 장모(27세) 씨는 “뉴스에서 청년 구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며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반응에 화가 났다”고 했다.
5060세대도 할 말이 많다. 택시기사 윤모(65) 씨는 “길거리에서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운전자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라며 “비싼 차도 사고 해외 여행도 다니면서 ‘아이 낳을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우리 세대의 시선에선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령자와 젊은이 간 세대갈등은 계속 심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답변한 응답자가 절반이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청소년 66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66.6%가 앞으로 세대갈등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 선거 거듭할수록 ‘세대 프레임’ 뚜렷 = 정치를 보면 세대 간 대립이 극명하다. 세대 간 대결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젊은 층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면서다. 이후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장·노년층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당시 선거가 끝난 뒤 젊은 층 일부를 중심으로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와 기초연금(당시 기초노령연금) 폐지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대선이 거듭될수록 세대별 투표성향은 더 뚜렷해졌다. 18대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던 부울경(부산·울산·경남)과 TK(대구·경북)의 20~30대 유권자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이다. 서울에서 ‘보수의 표밭’으로 분류되던 강남 3구에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계열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것도 20~30대의 투표가 영향을 줬다.
◇ 일자리ㆍ연금 ‘밥그릇 싸움‘으로 격화하는 세대갈등 = 최근엔 세대 갈등의 최전선으로 일자리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부상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 시기와 맞물려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의 논의가 이뤄지면서다. 2030과 5060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국민연금 인상 방안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을 막기 위해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거둬들이는 동시에 연금 지급 시기는 늦추는 내용으로 개편을 예고하자 2030의 볼멘소리가 쏟아졌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갈등은 앞으로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3월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8%가 ‘앞으로 일자리를 놓고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대립하는 구도가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10명 중 4명(41.8%)꼴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중·장년층에게 넘어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문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 세대의 고용문제와 실질소득 하락 또는 정체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부 국가의 사례와 같이 청년이 새로운 빈곤위험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복지제도, 사회지출의 세대 간 분배 등에서 심각한 세대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