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개편 방안에 대한 복지부의 입장은 한결같다. 국민과 전문가로부터 접수된 모든 제안이 검토 대상이지만 무엇이 정부안에 반영될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앞으로 나올 정부안도 소득대체율 상향, 보험료율 인상, 사각지대 해소, 다층보장 강화 등 목적에 따라 복수로 마련되는 만큼 특정 안이 정부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장·차관까지 나서서 계속 해명하고 있다. 검토 단계인 방안 중 일부나 개별 전문가 의견이 언론에 보도되면, 그 방안은 곧 정부안으로 오인되는 탓이다. 같은 말을 십수 번 되풀이해도 소용없다.
전문가들은 복지부의 지속적인 해명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배경으로 제도 전반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지적한다. 이병훈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론과 담론은 심리와 분위기가 중요한데, 국민연금과 관련해선 실제 내용은 혜택은 큼에도 기금운용이 어떻다, 소진시점이 어떻다 불안심리가 확대되다 보니 정책이나 제도를 개혁할 때마다 논란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신의 단적인 사례가 지급보장 명문화 논란이다. 확정된 국민연금(노령연금) 수급권은 재산으로 인정돼 헌법의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따라 법이 개정·폐지돼도 보호받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은 법률로 가입이 강제된 사회보험”이라며 “실질적으론 지급보장 명문화가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지급보장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단순히 ‘낸 돈도 못 받을까’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정부도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단순히 추측성 보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권 차관은 “이번에 여러 시·도와 지역을 돌아다니고 홈페이지에서 의견을 들으면서 불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다만 그 대응은 지급보장 명문화 약속과 개별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 배포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불신을 ‘말’로 해소하려는 건 본질을 외면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30년간 국민연금은 단순한 연금 차원을 넘어서서 경제·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며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드러났고, 정부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설명이 어설프다, 기금운용을 제대로 못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이제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소득대체율뿐만 아닌 제도 전반을 수술대에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