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재심의 끝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에 대해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하면서, 당사자인 삼바를 비롯해 재계, 공인회계사 업계, 투자자 등이 충격에 빠졌다.
특히 증선위는 이번 결정의 결적적인 단서(스모킹건)로 삼바 내부문서를 지목했는데, 발표 후에도 과연 이 내용이 스모킹건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따라서 이어질 행정 소송에서도 이 문제가 여전히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금감원이 스모킹건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은 삼바 재경팀에서 작성한 내부 보고 문서와 삼성의 옛 미래전략실 보고 문서 등 총 20쪽 정도 분량이다. 문건에는 “미국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바이오에피스 주식 49%를 살 수 있는 권리)을 삼바 회계 장부에 반영할 경우 1조8000억 원의 부채가 늘면서 바이오로직스가 자본 잠식에 빠질 수 있고, 그러면 신규 자금 조달이 어렵고 상장도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바이오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미래전략실에 제시하는 내용도 있다.
삼성바이오 측은 “특별히 뭘 숨기거나 모의하는 비밀 문건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건에 담긴 내용은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 증거가 됐다.
한 공인회계사는 “모든 기업은 회계 처리 변경 리스크와 관련해 A플랜, B플랜, C플랜 등 시나리오를 만든다”며 “시나리오 중 하나를 들이밀며 ‘스모킹 건’이라고 얘기한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시나리오 만드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증선위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오판한 것으로 보이며, 결국 이번 사태는 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다”고 했다.
또 다른 회계 전문가는 “이번 결정은 IFRS(국제 회계기준)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IFRS는 큰 원칙만 제공하고 그 안에서 회사의 재무제표 작성에 재량을 인정한다. 논란이 된 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 및 지배력 역시 IFRS에선 큰 틀만 제시하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진 않는다.
이 전문가는 “결국 회계사들은 당시 법 테두리에서 문제가 없는 상황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삼성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작은 기업이었어도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결정 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식으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릴 때마다 향후 리스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IFRS 도입의 전제는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인데 삼성바이오 사례와 같이 금융당국이 징계를 내리면서 전문가의 판단 영역이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 역시 최근 연임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 의혹에 대해 “논리 구조, 공식 상 문제가 없는데 다른 전문가 이견이 있다고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IFRS 환경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IFRS 의거한 외부감사인(삼정회계법인)을 포함한 다수 회계법인 의견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했다는 점을 강조해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복잡한 정치적 역학 구도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당국자는 “모든 리스크를 금융당국이 떠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금융당국은 주어진 법과 권한 안에서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심사했고, 내부문서에 대한 증거 능력에 대해선 법원이 최종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