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천장에 매달린 굴비 그리고 부동산정책

입력 2019-05-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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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밥 한술 뜨고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또 한술 뜨고 굴비 한 번 쳐다보아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자린고비 영감’은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귀한 굴비를 아껴먹어야 한다는 구두쇠 심보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막내는 굴비를 두 번 쳐다보다가 자린고비 영감한테 혼나기도 했다. 먹지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굴비. 요새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이 딱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굴비 신세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전체 공급물량의 80%까지 선정했는데 앞으로 500%까지 뽑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을 때 예비당첨자는 기존 80명에서 500명까지 늘어난다. 해당 지역도 서울, 과천, 분당, 광명, 하남 등 소위 ‘핫’한 지역(투기과열지구)이다.

정부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무주택자들은 이 소식이 반가웠을까. 사실 무주택자를 우선한 청약 제도는 작년 12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마련돼 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냉랭하다.

“당첨이 된다고 해도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걱정이에요. 금융이 제한돼 있어 분양가를 생각해 작은 평형대만 쳐다볼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경기도 분양에 나선 A단지의 견본주택에서 만난 관람객의 토로였다. 견본주택에 가면 자금 마련이 어렵다는 하소연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무주택자들이 청약 당첨 기회만큼 절실한 것은 바로 돈이다.

강도 높은 금융 규제가 야속하다는데 청약 당첨 기회를 확대한다고 하니,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무주택자들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천장에 굴비를 보며 밥을 먹으라는 어린이 전래동화 ‘현실판’인 셈이다.

“업계와 정부의 시각 온도 차가 크다는 걸 이 자리에서 느꼈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나온 국토부 관계자의 발언이다. 정부 정책과 시장 사이에서 속내를 감춰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더라도 시장의 아우성을 관망한 듯한 말에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가 갖는다고 한다. 정부의 취지대로 무주택자가 신규 주택의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이제 천장에 매달아 놓으려 굴비를 감았던 새끼줄을 풀 때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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