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양승태, 조국 겪으니 바뀌는 씁쓸한 것들

입력 2019-11-25 10:44 수정 2019-11-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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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 사회경제부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공통점은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정중앙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금 각각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 전 대법원장, 조 전 장관은 잘 몰랐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복의 무게와 검찰 공개소환이 피의자에게 주는 중압감을….

양 전 대법원장은 올 1월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았다. 몇 번 더 검찰청에 출석한 뒤 기소됐고 현재 1심은 46차 공판을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2회 진행된다. 1심 공판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는 법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넓다. 150명 이상의 방청객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별로 없어 늘 텅 빈 상태로 재판이 진행된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200여 명에 달해 1심 선고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 이후 변한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법정에서 검사에게 호통치는 판사가 늘었다는 점이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판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더불어 검찰 수사 방식에 더욱 관심을 갖게 했다. 검사의 공소장이 어떻게 작성되는지를 유심히 봤고, 예전처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사소송의 경우 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을 기초로 변호인의 주장을 종합해 따져본 후 실체적 진실을 판단한다.

그런데 근래에 검사의 공소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판사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공소사실의 신빙성에 대한 지적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과거엔 판사들이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방을 지켜봤다. 검찰은 공소사실의 범죄 혐의 증명에 힘썼고, 변호인은 위법성 조각 사유를 통해 방어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판사들이 직접 공소장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했다. 성향에 따라서는 법정에서 검사에게 면박을 주기도 한다. 공판 직후 검사들의 판사 뒷담화 심심찮게 들린다고 하니 곤욕을 치르기는 한 모양이다.

조 전 장관에 이르러서는 요란한 구호에 불과했던 ‘인권’이 전면에 등장했다. 검찰이 수사관행 개선을 골자로 한 자체 개혁안들을 내놓자 법무부는 새 훈령을 마련하며 합을 맞췄다.

그러나 타이밍이 석연치 않다. 검찰의 피의자 공개소환 폐지 방침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소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무르익자 이번엔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수사배경 등을 설명하는 정례 티타임 등 구두 브리핑을 금지하고 전문공보관 외에 검사, 수사관은 기자와 개별접촉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보를 낸 기자는 검찰청 출입을 막겠다고도 했다.

다음 달 새 훈령이 시행되면 검찰이 ‘깜깜이 수사’를 해도 이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어진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우려된다. 검찰개혁의 눈높이가 국민이 아닌 특권층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찰개혁의 특혜(?)를 입은 조 전 장관은 검찰 수사에서 계속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진술거부권은 피의자에게 보장된 헌법상 권리이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통상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면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커지기도 한다. 법학자로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사가 검찰 수사를 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 시선이 따갑다.

각종 관행을 관대하게 받아들였던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진즉에 바뀌었어야 했다. 긴 세월 많은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봤다. 검찰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다반사였다.

양 전 대법원장, 조 전 장관처럼 권력자들이 당사자가 되니 이것저것 뜯어고친다고 난리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없다. 성찰 없는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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