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황영기 회장의 'M&A 선전포고' 이후 금융권에서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의 '몸집 불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금융회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금융지주회사간 대등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국내은행 1위가 아시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며 세계 100위권에도 겨우 드는 수준"이라며 "빅3간 합병을 통해 자산 500조대의 금융지주사를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공언했다.
황 회장은 단기간 내 빅3간 대등합병이 어려울 경우 우선 기업은행이나 외환은행 등 100조원 규모의 은행과 합병, 350조원 규모로 시작해 500조원대로 키우는 복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KB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빅3 대등합병' 현실성 있나
이같은 황 회장은 공격적인 발언에 대해 일단 M&A 당사자들은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내심 불쾌해 하는 반응이다. 특히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현재 신한지주는 M&A 대상으로는 사실상 벅찬 상대이고, 정부지분이 약 73%인 우리금융과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하나금융이 제 1순위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최근 정부가 '외국 자본 유치'를 강조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독자적 M&A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황 회장의 발언에 대해 "노코멘트"라면서 "내부적으로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도 취임을 앞둔 CEO의 선언적인 발언 정도로 치부하며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빅3'에 비해서 자산규모가 열세인 것은 사실이나 다른 은행이나 금융사를 합병해 자체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 거론되는 M&A 당사자들 대부분이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복잡해 단기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부질없이 시장질서만 어지럽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물론 황 회장은 "공격적인 M&A가 아닌 대등한 인수합병이 바람직하며, 우선 시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라며 적대적인 M&A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남다른 국내 현실에서 자칫 경영권 분쟁으로 치닫게 될 경우 시너지를 내기는 금융권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몸집불리기'보다 '체질개선' 먼저
금융권이 '몸집 불리기' 경쟁으로 치닫는 현실을 놓고 대내외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이 M&A를 통해 대형화 경쟁에 몰입하면서 그만큼 적지 않은 부작용도 뒤따랐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 게 현실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강행해 온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해 상당수의 금융기관들이 대형화되면서 상위 금융기관들의 시장 독점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그동안 금융권의 합병들은 심각한 후유증만 양산했을 뿐 시너지효과를 창출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실패사례가 말해 주듯이 금융사의 대형화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큰 착각"이라면서 "대형화로 인해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의 결과로 대형화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후발주자인 KB금융지주가 자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전에 대등합병을 거론하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가 어른과 맞붙어 보자는 것"이라면서 "대형화가 목적이라면 국내은행이 아니라 외국은행을 인수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금융지주간 대등합병이 이루어지려면 당사자들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함은 물론,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여부도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결여될 경우 합병으로 덩치는 키울 수 있으나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까지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