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의 2.4% 성장목표는 벌써 힘겹다. 세계 경제 후퇴가 먹구름이다. 세계은행(WB)은 글로벌 성장률을 2.5%로 작년 6월의 전망치(2.7%)에서 대폭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불과 3개월 전 제시한 3.4%에서 3.3%로 하향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최근 상황이 대공황의 파국을 맞은 1920년대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글로벌 컨센서스도 비관적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의 성장률 전망은 대체로 2.1∼2.3%다. 1% 후반까지 내다본 곳도 있다.
정부의 2020년 경제정책방향은 ‘경제상황 돌파’와 ‘혁신동력 강화’ ‘경제체질 개선’ ‘포용기반 확충’ ‘미래 선제대응’의 다섯 가닥이다. 엄중한 경제위기 인식을 반영한다. 투자를 돌파구로 100조 원 규모의 민간·공공·민자 투자프로젝트를 발굴·집행하고, 내수 진작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경기 반등의 모멘텀 마련을 위한 정책들도 망라됐다.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바이오·미래차 등 신산업 혁신을 가속하고, 일본의 수출규제로 부각된 소재·부품·장비산업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규제 샌드박스 사례 확대 등 규제혁신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취약계층 기초연금 인상,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로 포용 기반도 강화한다. ‘갑을문제’ 해소를 위한 거래관행 개선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공정이슈’도 빠지지 않는다.
방향은 옳고, 대응 방안도 촘촘하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손에 잡히는 알맹이가 없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대책에 우리 경제의 시스템 위기에 대한 성찰과 구조개혁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채, 대증(對症) 처방만 잔뜩 동원하고 있다.
한국 경제 저성장은 이미 뉴노멀(New Normal)이다. 과거의 고도성장 시대가 다시 오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성장률만 해도 2017년 3.2%, 2018년 2.7%, 2019년 2.0%로 추락했다. 작년에는 잠재성장률 2.5∼2.6%에도 훨씬 못 미쳤다. 잠재성장률은 중·장기 성장력을 가늠케 하는 경제 기초체력이다. 성장률이 이보다 낮다면 경제시스템의 심각한 결함으로 활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온다.
한국 경제의 추세적 하락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럴 비전이 있는가? 허상(虛像)을 좇는 정책의 난맥상이 저성장을 가속화한다. 투자와 소비가 왜 부진하고, 경제활동의 허리인 30·40대와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왜 줄고 있는가? 비현실적인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급등,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법인세 인상, 노조 권력 비대화와 세계 최악의 노동시장 경직성,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 기득권에 휘둘린 규제개혁 실패가 경제활력만 갉아먹고 있는 탓이다. 일본형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빠져들고, 남미 같은 만성적 위기 국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새삼스럽지 않다.
성장절벽과 경기 후퇴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성장이 멈추면 국민소득이 늘지 않고 일자리도 없어진다. 그토록 소득주도성장에 매달렸지만, 오히려 작년 실질국민총소득(GDI)은 0.4% 줄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7.0% 이후 21년 만의 최악이다. 정책은 늘 잘못될 수 있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빨리 고쳐야 한다. 모든 실패는 당대 정권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잘못된 결과는 과거 정권 탓이고, 외부 여건 때문이라고 한다. 무조건 내가 옳고 무오류의 정책이니 경제원칙, 시장의 상식과 싸우면서 밀어붙인다. 이념 편향의 오만과 착각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희망이 사라지는 나라로 내몰고 있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