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50만 명 증가 제목의 고용동향은 이제 식상하다. 13일 이투데이의 사설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단적으로 재정을 투여한 근로사업을 통해 60대 이상의 초단기 일자리가 주도한, 경기 상황과 동떨어진 ‘억지 춘향’ 고용동향이었다. 작금의 고용 추세가 문제없다면 대통령이 ‘혼내야 할’ 대상인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고용 증대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는 행보가 생뚱맞아 보인다.
최근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근래 고용의 질과 양에 대한 논란을 쉽게 정리해줄 분석을 제시했다. 근로시간에 따른 고용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즉 취업자 총량은 하루 8시간 일하는 사람이나 1시간 일하는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총량 자료가 고용의 질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 방법을 우리의 상세한 경제활동 조사 자료에 적용하여 시간제 근로자들을 전일제 근로자로 환산하여 보여준다. 이렇게 환산된 근로자 수로 산출한 고용률은 올 1월이 작년 1월보다 낮고, 1월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 10년간 가장 낮았다. 초단기 근로자가 취업자 통계를 부풀린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이다.
그런데 정책 당국자들이나 통계자료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고용의 질을 반영하는 자료를 만들어 실상을 파악하고 알리려는 노력이 없다 한다. 왜 그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이다. 요즘 경제 사정, 특히 고용 현황에 대한 고위 정책 당국자의 억지스런 발언을 듣고 있으면 이번 정부 첫 부총리가 생각난다. 그는 당시 경험이나 상식보다는 생경한 이념에 바탕을 둔 새 정부의 정책 발상들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를 냈었다.
사회안전망 미비로 공공사업을 통해 저소득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것이기에 고용 통계를 부풀리는 용도로 전용되면 곤란하다. 취업자 총량 마케팅에만 집착하면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 장치가 고장났다는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가 추진해온 여러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민간 부문의 자생적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다. 기대를 모으며 시작되었던 ‘△△형 일자리’ 정책도 내실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노동시장 제도나 법을 차별화할 수 있을 권한은 물론 낮은 재정 자립도로 그런 정책을 시행할 예산이 없다. 나라가 얼마나 크길래 광주에 적합한 일자리 정책이 있고, 부산에 적합한 일자리 정책이 따로 있겠나. 만약 그렇게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다면 최저임금을 지역의 사정에 맞추어 다르게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일괄적인 규제가 아니라 산업마다 다른 여건을 반영하여 근로시간을 책정하는 것은 어떤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초기 그의 무경험과 충동적 행보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던 비중 있는 참모와 각료들이 대통령 지시에 맹종하는 대신 그의 곁을 떠났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미국의 공직자들이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은 무색무취한 집단으로 여겨졌던 공무원들을 섹시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공직을 맡은 식자들이 항상 전문적 분석에 바탕을 둔 판단보다 정치인 상전의 호불호(好不好)를 우선적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면,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이상하지 않게 된다. 코앞의 선거밖에 보지 않는 정치인들은 지도를 못 읽으면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장수와 흡사하다. 평지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험한 지형에 이르면 길을 잃어 장졸 모두 조난된다. 향후 경제 여건의 산세가 더 험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