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국사회는 ‘병적 불안’의 그늘에

입력 2020-02-17 15:06 수정 2020-02-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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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공포가 됐다. 시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이다. 홈쇼핑이나 마트·온라인쇼핑몰에서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웃돈을 줘도 없어서 못살 정도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 의지가 무색할 정도다.

해외 고가 공기청정기도 강남 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스(SARS)의 웃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직장인들의 삶도 바꿔놨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해 국내 기업 대부분은 지난달 말부터 사내 행사 등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정치권에도 영항을 주고 있다. 정치인들 상당수가 현장 선거운동 대신에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불안(不安)의 한 단면들이다.

불안(Anxiety)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이 편치 못하고 조마조마한 상황을 이르거나,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려 뒤숭숭한 상태를 말한다.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는 적절한 불안(Normal Anxiety)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병적인 불안(Pathological Anxiety)에 있다.

한국경제도 어느 때부터인가 ‘병적인 불안’에 갇혀 있는 듯하다. 몇몇 전직 경제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은 언론을 통해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가 대외 변수보다 정책 실패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주장한다. 이것도 모자라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이 무면허 운전자가 술을 잔뜩 먹고 마약을 투약한 채 폭주하는 것과 같다며 불안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과연 이정도로 위기일까.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22년째 흑자 행진이다. 흑자 규모가 전년 대비 22.6%나 줄었지만,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와 반도체 경기 둔화 속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 있는 숫자다.

금융·외환 위기와 같은 위기가 닥치더라도 버틸 주머닛돈도 충분하다. 위기 시 항상 문제가 됐던 달러 유동성과 관련한 준비 현황을 보면 외환보유액은 4097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다. 외환보유액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단기외채 대비 기준, 3개월 치 수입 대비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제시한 복합 기준 등에 따르면 대체로 적정 기준을 충족하는 상태다.

그런데도 시장 참여자들은 불안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와 민간투자(총고정자본형성)의 합인 민간지출은 341조1592억 원이었다. 지난해보다 0.2% 줄었다. 민간소비와 민간투자를 합만 민간지출은 경제 전체의 유효 수요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보면 된다. 민간 지출이 감소한다는 것은 유효 수요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분기 -9.4%였던 민간투자 증가율은 4분기에도 -3.8% 상태다. 반도체 경기가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기업의 설비투자가 감소한 탓이다. 투자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던 민간소비는 또 어떤가.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1.9%)은 2013년(1.7%) 이후 가장 부진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래가 불안해서다. 자산 상위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95곳의 지난해 6월 말 현재 연결기준 현금 보유액은 총 242조2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6월 말의 223조7400억 원보다 18조460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잉여자금(순자금운용)도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17조6000억 원에 달한다. 전년 같은 기간의 12조 원보다 급증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지갑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을 치유하고, 일그러진 안전의 가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정부는 세계 경제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서민과 기업들이 한숨을 돌리고 경제 활력을 살리는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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