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뉴노멀은 성장이 아니라 생명의 지속이다

입력 2021-0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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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며 일상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안에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회복되더라도 코로나 이전의 일상과는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 뉴노멀을 이야기한다. 이상기후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할지 많은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경제, 경영 분야에서도 새삼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가을 한 글로벌 컨설팅사는 ‘뉴노멀 시대의 5대 경향’으로 ①탈세계화가 가속화되고 ②효율성보다 회복탄력성이 중요해지며 ③디지털 전환이 촉진되고 ④소득수준 및 건강 관심도에 따른 소비행태 변화하며 ⑤신뢰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점을 꼽았다.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30년 전 전 세계적으로 두터워진 환경과 자원 문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대응하자며 노멀이 된 용어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지구 생태계와 미래 세대에 빚을 지지 않는 인간 사회의 건강한 지속성을 논의한 현명함이 있었지만, 이후 ‘지속가능성’은 그저 수식어로 삼고 ‘발전’에 방점을 찍고 ‘성장을 지속’해왔다. 지구 생태를 착취하고 미래 세대의 기회를 부채로 쌓으며 풍요를 누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논의되는 많은 뉴노멀은 새로운 투자와 성장의 틈새를 노린다. 유럽 그린딜, 미국 그린 뉴딜, 한국판 뉴딜 등 뉴노멀 국가 전략들도 성장과 발전을 숨기지 않는다. 저성장 뉴노멀이 처음 논의된 세계경제위기 이후에도 성장은 부추겨져 왔다. 성장의 논리는 양극화와 도농 격차를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경제적 성장을 꾀해온 발전 방식(산업화, 도시화, 대량생산-소비 등)과 수단(화석에너지)이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코로나 팬데믹 등 복합위기로 누적되어 이제는 생명 활동이 목전에 위협받고 인간 사회의 지속성이 위기에 봉착하였다. 문제를 일으킨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유한한 세계인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우리 삶의 목적은 물질적 성장이 아니라 생명의 지속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몰락’에서 과거의 많은 문명이 붕괴한 이유는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들이 옳은 결정을 내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위기에 대응할 지식과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회구성원 다수의 인식과 행동을 조직하여 사회의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옳은 결정’은 사회의 주체들이 생명활동을 지속하며 생명을 실현해가는 것이며 ‘결정을 내릴 능력’은 곧 ‘민주주의’이다. 내가 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소통과 참여로 사회가 운영될 때 사회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독재나 과두체제는 옳은 결정을 내릴 사회적 능력을 방해할 뿐이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전환해야 할 때이다. 이미 누적되어온 위기들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격차를 줄이고 생활기초를 튼튼히 하며 사회적 지지와 신뢰가 높아지면 개방성과 다양성, 창발성도 늘어나며 회복탄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의 행복도 높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이다.

우리 농촌은 성장 시기의 물적, 인적, 공간적 뒷받침을 하느라 등골이 빠져 이제는 몰락,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생활의 바탕인 먹거리 생산 공급과 생태, 경관의 핵심 공간이다. 농촌 없는 도시는 없다. 그리고 이 엄중한 코로나 위기가 농업과 농촌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난해 말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에서 도시민의 41.4%가 향후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년보다 6.8%포인트가 증가하였다. 독일에서도 코로나로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였다는 조사가 있었다. 막상 농촌에서는 기후위기로 이상기후가 빈번해져 생산재해가 가중되고 있고, 코로나로 이주노동자 등 일손을 구하지 못해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 수준이다 보니 농촌의 사회적, 근본적 역할이나 중요성이 과소 대표되어 국회도 정부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예전이나 성장시대나 위기의 시대에도 ‘농’은 인간 사회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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