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추구형 나오자 다시 테스트 …은행 “현장 적용까지 시간 부족”
25일 본지 기자가 고객으로 위장해 서울 은평구의 A시중은행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문의하자 행원은 이같이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시행된 첫날이지만 현장에서는 금소법과 동떨어진 판매 관행이 여전했다. 이런 판매 방식은 고객의 투자 성향을 유도해 그에게 맞지 않는 상품을 권유하는 행위로 금소법이 규정한 ‘적정성 원칙’에 어긋난다.
금소법은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이 잇따르자 9년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금소법의 주요 골자는 일부 금융업법에만 적용되던 6대 판매 규제(적합성ㆍ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영업 행위ㆍ부당 권유 행위ㆍ과장 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 상품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반면 금융 회사는 불완전판매 방지 차원에서 임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등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특히 금융사 영업방식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 할 전망이다. 시행 첫날 일선 영업현장에서도 미흡한 준비 사항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은행은 투자 상품 판매 전에 고객에게 재산 상황과 투자 상품을 취득하거나 처분한 경험을 물어 투자 성향(공격 투자형-적극 투자형-위험 중립형-안정 추구형-안정형 등)을 진단하고, 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한다. 적정성 원칙에 따라 공격 투자형 고객이라면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안정형 고객이라면 저위험 저수익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A은행 직원은 적정성 원칙을 어기고, 기자의 투자 성향을 공격 투자형으로 유도해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권유했다.
근처 B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B은행 직원에게 “영업점의 주력 펀드 상품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직원은 기자의 투자 성향을 진단하기도 전에 1년 평균 수익률이 20%인 고위험 상품 3가지를 추천했다. 은행은 적합성 원칙에 따라 소비자가 자신의 위험 등급에 맞지 않는 상품에 관심을 가질 경우 설명서 등 기본 정보도 제공하면 안 된다. 이 직원은 추천한 고위험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기자가 그중 하나를 가입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투자 성향을 진단했다. 기자의 투자 성향이 ‘안정 추구형’으로 나오자 이 직원은 “성향 진단 다시 해보시겠냐”고 물었다. 투자 성향을 진단하기도 전에 부적합한 상품을 추천하고 결과가 나오자 이를 조작해 부적정하게 고위험 상품 가입을 시도한 것이다.
금소법 규정상 A, B은행처럼 적합성ㆍ적정성 원칙을 위반하면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금소법은 6대 판매 원칙을 위반할 경우 최대 1억 원의 과태료를, 설명 의무, 불공정 영업 행위ㆍ부당 권유 행위·과장 광고 금지에 대해서는 수입의 최대 50%를 징벌적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은행 측은 금소법의 시행에 맞춰 대응 준비 태세를 갖추는 데 물리적인 여건이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금소법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확정한 것은 지난 17일로 금소법 시행 8일 전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원칙이 정해져야 그 기준으로 디자인을 하고, 전산을 개발하고 검증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일주일 정도의 시간으로 완벽하게 현장 적용하기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10월에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고, 감독규정은 지난해 12월에 발표했다”며 “은행들이 금소법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