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 노조는 다음 달 31일 임기가 만료되는 나명현 사외이사의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다.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참여케 하는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 중인 수은 노조는 2명의 인물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할 예정이다. 지난해 노조추천이사제가 한 차례 좌절된 만큼 노조는 신중하게 인물을 선정할 전망이다.
신현호 수은 노조위원장은 앞서 12일 청와대 분수 앞에서 열린 ‘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제 무산 규탄 기자회견’에서 “작년 1월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할 때 가장 많이 들은 건 ‘노조가 추천한 인사들의 면면이 정권 코드와 맞지 않아 선임이 힘들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노조가 추천할 인사는 반정부성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노동계 인물이 아닌 교수들이 언급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수은의 사외이사는 행장이 제청해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다. 지난해 1월 수은 노조는 방문규 행장에게 2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고 방 행장은 이 중 1명을 포함한 총 4명을 기재부에 제청했다. 기재부는 유복환 전 세계은행 한국이사와 정다미 명지대학교 교수를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모두 사측이 추천한 인물이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최고경영자(CEO)의 독주를 견제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은행권에선 은행이 추구해야 할 공익성과 노조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제기돼 번번이 도입이 좌절됐다. KB국민은행은 4차례, IBK기업은행은 2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하지 못했다.
노조추천이사제의 도입이 실패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깜깜이 추천’이다. 통상 행장이 상위기관에 이사 후보를 추천할 땐 어떤 후보를 임명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해 제청한다. 이때 행장이 노조가 추천한 후보를 뒷순위로 빼서 제청해도 그는 노조에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없다. 노조가 추천한 후보를 최종 후보군에 넣어 상위기관에 제청하는 형식을 갖추면서 실질적으로는 사측이 미는 후보가 이사로 임명되게끔 밀 수 있는 것이다.
수은이 이번에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하게 된다면 금융권 최초다. 수은 내부에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방 행장이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커 이번 노조추천이사제 추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 위원장이 “국회에서 노동이사제가 입법되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번마저 불발되면 수은 노사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