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하늘을 찔렀던 2000년대 중반, 항공사 최대의 고민은 유류비였다. 항공유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했다.
날개 끝이 하늘로 꺾인, 이른바 ‘윙-렛(Wing-let)’을 장착하면 양력이 커진다. 항공유를 아끼는 방법이기도 하다.
항공기의 무게 역시 유류비에 영향을 미친다. 갖가지 아이디어를 쥐어짜던 항공사들은 이 페인트 무게마저 덜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동체의 페인트를 벗어내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면 그만큼 유류비가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2006년 비용 절감 차원에서 화물기의 동체 페인트를 모조리 벗겨낸 화물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보잉 747-400을 바탕으로 동체 도색을 모두 벗겨낸 ‘누드 항공기 1호’는 은색 철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회사 로고와 식별번호만 남긴 채 페인트를 벗겨내자 항공기 무게가 무려 200㎏ 감소했다.
당시 캐세이퍼시픽은 “1대당 연간 150만 홍콩 달러(약 1억9000만 원)가 절감된다”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 1940년대 치열한 고성능 싸움을 벌였던 차 제조사들은 다양한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당시 유럽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차들은 앞서 언급한 캐세이퍼시픽 항공기처럼 차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페인트를 모조리 벗겨냈다.
페인트를 벗겨내니 고성능 경주용 차 대부분은 고스란히 철판을 드러났다. 페인트 무게마저 덜어내 성능을 끌어올리겠다는 처연함도 서려 있었다.
은색 철판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들은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주용 차를 일컬어 날아가는 은빛 화살이라는 의미를 담아 ‘플라잉 실버 애로우’라는 별칭도 생겼다.
자동차 도색은 여러 페인트를 반복해서 입힌다. 일단 철판 위에 페인트가 잘 묻어나도록 기초 칠을, 이른바 ‘프라이머’를 칠한다.
이후 고객이 주문한 컬러를 덧칠하고, 그 위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칠감을 최종적으로 덧칠한다. 이게 ‘클리어 코팅’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15㎏에서 많게는 30㎏의 무게가 줄어든다.
고성능 경주용 자동차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냈다면 요즘 차들은 고성능을 상징하기 위해 무광 페인트를 선호한다.
도색 과정에서 반짝이는 클리어 코트를 입히는 대신, 무광 색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특수 칠을 더한다.
그 옛날 고성능 자동차가 광택이 없는 철판 색상이었다면 요즘 고성능 차들은 그 옛날 고성능 차의 아이콘(무광 컬러)을 추종하며 새로운 무광 도색을 입히고 있는 셈.
완성차 제조사들은 이런 무광 색채를 '매트 피니쉬(Mat Finished)'라고 부른다.
국산차도 점진적으로 이런 무광 색채가 늘어나고 있다. 광택이 없는 파스텔 색조는 반짝이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광택이 사라질 우려가 없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지닌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초 현대차 1세대 벨로스터가 ‘건 메탈 그레이’ 색상을 활용하면서 인기가 시작했다. 제네시스 스포츠세단 G70은 부분변경 모델도 3가지가 무광 컬러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