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탄핵으로 대통령 임기 시작이 바뀌어 새 정부의 출범이 모내기를 앞두고 볍씨가 싹을 틔우는 때와 맞물리게 되었다. 볍씨를 골라내고 소독하여 모판에 안치듯이 새 정부 첫 입각 후보들이 드러나고 검증이 한창이다.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벼농사에 걸맞는 볍씨를 골라내다보면 나름 튼실한 나락으로 준비해 왔건만 막상 쭉정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해오던 소금물 선별만으로 준비한 볍씨를 골라내려하니 온통 쭉정이들이 둥둥 떠오르니 이것 참…. 이를 지켜보던 눈 맑은 한 농부는 모판에 깔 상토를 살펴본다. 볍씨를 골라내봐야 상토가 오염되면 어렵게 유지해온 친환경 인증조차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녹비작물까지 키우며 건강하게 땅심을 키워온 논을 믿고 하늘을 믿으며 올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장관 후보자들이 쭉정이로 드러나는 양태는 참으로 기발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청문회에 나서는 염치없음은 쥐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발로이고, 순간의 수모만 버티면 그 기득권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욕망의 소산이며, 하나같이 현행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핑계이다. 그 와중에 빠지지 않는 항목이 농지법 위반 혐의이다.
자본주의 초기 축적이 토지 몰아주기로 구축되었다지만 민주공화국이 발전해온 역사는 사회적 자산인 농지를 생산자들이 생산활동에 이용할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온 과정이다. 상품화된 부동산이 자산 축적으로 사회양극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해도 공화국의 헌법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살아있고, 농지법은 식량 생산과 국토환경 보전의 기반 자원으로 농지가 보전 관리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이념을 적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부재지주를 양산하고 농사짓는 농지에 근거해 지원하는 직불금을 얼굴도 모르는 농지 등기자가 받아가고, 내가 이 논밭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것을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데도 전년에 직불금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무경운으로 지어온 땅은 농지로 인정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행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은 국가가 농지개혁 이후 농지의 소유와 이용에 대한 실태를 모르기 때문이다. 알면 행정조치를 하고 처벌해야 하니 묵인해 온 것이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민주공화국에 농지 정책이 없는 셈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직원들의 농지투기 문제로 정말 많은 토론회와 농지 실태조사 방안이나 정책 관련 용역이 있었고, 농지법이 부분 개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전수 조사나 실태 파악은 없다.
농지 조사는 진보, 보수를 넘어 한 사회의 지속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기회 공정의 잣대이다. 새 정부도 공약에서 식량주권, 청년농 육성 등을 위해 농지보전 정책을 내세우기도 했다. 시대적으로는 농지 소유 이용을 넘어 전국 토양 건강 상태를 조사하여 탄소 저장 가능량과 비료 투입량 등을 파악하는 탄소중립 기초기반 조사를 시작한 아일랜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새 정부 출범 과정에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하는 양태들이 있지만 촛불이 일어나진 않는다. 전 정부가 탄핵되고 수감된 이유는 뒷돈을 챙겼기 때문이다. 한숨을 쉴지언정 이미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불공정은 수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를 넘는 권한을 행사해 뒷돈을 챙기려 한다면 촛불 아닌 들불이 일어날 것이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그 선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정권의 명분을 유지하고, 그 이권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파악하려면 농지 조사부터 하기를 고언한다. 농지 정책은 여전히 보수 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