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자신감에 차 있다. 계획대로만 하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콕 집어 육성, 발전시키겠다고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여기저기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정책 발표 후 “이번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은 완결판이 아니며 앞으로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고 관련 대책을 지속 보완할 것”이라고 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을 고려하면 정부도 어느 정도 아는 눈치다.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은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중에서도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대기업의 설비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조정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현행 6%에서 8%로 2%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투자 증가분에 대해 4%를 추가 공제해 주는 것을 고려하면 최대 12%까지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반면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시 4년간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반도체 기업에 총 540억 달러(약 70조9800억 원) 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산업 육성법 도입을 추진 중이다. 독일과 일본은 총투자비의 40%를 일회성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대기업이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에 10조 원의 반도체 시설투자를 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은 최대 1조2000억 원, 미·독·일에선 최대 4조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셈이다. 굳이 한국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반도체 인력 양성 대책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역균형발전 측면을 고려해 지방대학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야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던 지방대가 신입생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해 이젠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게 생겼다.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은 반도체 인력 양성이라는 한쪽 면만 본 것이다. 게다가 반도체 인력 양성은 단순히 대학 정원을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현장 전문가를 교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겸임·초빙 교수 자격요건을 완화했는데, R&D를 주도할 석·박사급 인재를 키울 교원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도체 업체들이 급한 것은 R&D 인력이다.
결은 다르지만,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삼성전자의 총수 리더십 부재도 해소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 족쇄를 풀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안배가 있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경제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이 됐다. 이 부회장이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은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이미 입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