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국격을 높인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입력 2022-08-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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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생산도 사람도 판매도 모두 품질이었다. 그 품질을 핵심에 놓고 경영을 했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가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과 경쟁해 우뚝 선 비결이다.

정몽구 회장에게 현장은 품질경영의 최전선이었다. 그는 2010년 7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찾았다. 조립라인을 순시하면서 공장장에게 YF소나타의 보닛을 열어보라고 지시했다. 공장장이 보닛을 열려고 했지만, 보닛후크(잠금걸이)를 찾지 못하고 헛손질을 했다. 현장에서 품질을 확인하고픈 회장에게 공장장의 손끝은 현장을 벗어나 있었다. 현장에서 품질을 확인하지 못한 회장은 현장에서 공장장을 교체했다.

연초 시무식 후 사무실을 둘러보던 정 회장은 이사대우로 갓 승진한 임원을 만났다. “자네 방은 어딘가?” 당시 현대차는 상무 이상만 별도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이사대우에게는 방이 없었다. 회장은 사무실을 둘러보고 떠났지만, 현대차 인사팀은 이사대우를 상무로 승진시키기로 했다. 그에게 방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 얘기가 바깥에 퍼졌을 때 다른 회사에서는 이를 폄하했다. 앞서 말한 공장장 인사까지 들먹이며 저런 즉흥 경영, 즉석 인사로 큰 회사가 굴러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수시인사는 이후 기업의 주된 패턴이 됐다. 연말까지 기다려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 요인이 생기면 어느 때고 바로바로 실시하는 것을 다른 기업도 따라 했다. 이완될 수 있는 조직의 분위기가 현장에서 다 잡히고 긴장 속에서 경쟁을 헤쳐 나가는 것이 현대자동차식 인사의 품질관리였다.

품질관리에는 열외였던 판매부문에도 이 기법이 적용됐다. 1998년 9월 현대차는 미국시장에서 ‘10년간 10만 마일 무상보증’을 도입했다. 판매현장에 떨어진 품질관리였다. 당시 포드와 GM은 3년 3만6000마일, 도요타는 5년 6만 마일을 보증하는 정도였다. 회장의 특명에 따라 양재동 사옥에는 품질상황실이 설치됐고 정 회장은 일주일에 두 번, 품질개선 사항을 직접 보고 받았다. 제이디파워의 충고는 액자로 걸어 놓았다. 그때까지 현대차는 “중고차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새 차”였다. 1986년 미국 진출 첫해에 16만7000여 대를 판매한 신기록의 이면에는 이런 쓰라린 추억이 있었다. 판매가 늘면 늘수록 가난한 사람들이나 구매하는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만 굳어졌다.

그러나 품질경영을 도입하면서 이미지가 바뀌었다. 급기야 2006년에는 제이디파워 신차 품질조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올해의 조사는 더 극적이었다. 현대차 그룹은 7개 차종을 차급별 상품성 1위에 등극시키며 글로벌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많은 최우수 차종을 배출했다.

품질경영은 정몽구 회장을 떼어 놓고는 설명될 수 없다. 그는 기아차를 인수한 직후 인기차종이었던 카니발을 자신의 한남동 자택 앞마당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한 달 뒤 백묵으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도어 위쪽, 시트 밑, 문틈에 일일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2년에는 오피러스 수출 차량을 시험 주행하다 미세한 소음을 찾아내 선적을 40일가량 올스톱하고 엔진의 잡소리를 잡으라고 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반들반들한 새 차를 만들어 내는 것은 신나고 빛나는 일이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은 새 차 만드는 일에 바로 뛰어들지 못했다. 부품회사였던 현대정공에서 기름칠을 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고장 난 차를 고치며 자동차를 배웠다. 자신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남을 뒷바라지하면서 스스로 역량을 키웠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이 자동차의 핵심인지를 깨우쳤고 품질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현장은 기름칠, 망치질을 통해 그에게 진실을 일깨웠다.

생산과 판매, 인사의 모든 영역에서 품질을 혁신한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은 나라의 격을 한층 올렸다. 해외에 나가 현대기아차가 보이면 반갑다. 몇 해 전 미국 피츠버그에 갔을 때 우버를 여덟 번 불렀는데 그중 두 대가 현대차였다. 기사는 우리를 보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엄지척을 했다. 현대차가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라고 했다. 몇십 년을 외국에 다녀도 으레 우리에게는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한국이 먼저 나오게 됐다. 한 20분 길을 걸으며 마주오는 자동차를 세었더니 총 42대 중 5대가 현대기아차였다.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 섬에서 만난 기아차 로고는 가슴을 뛰게도 했다.

내가 만난 현대차 임원들은 참 일을 열심히 했다. 6시가 조금 넘으면 출근하는 부지런한 회장 덕분에 5시대에 나오는 임원들도 부지기수였다. 7시 반 외부 조찬이 있으면 주최 측은 이른 시간에 모여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 옆에 앉는 현대차 임원은 덕분에 아침 시간이 매우 여유롭다고 했다. 부지런한 임직원이 품질에 매진한 결과가 피츠버그 우버 기사의 엄지척이었다.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은 그만큼 나라의 격을 높이고 국민들의 자부심까지 덩달아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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