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누구?...70년간 재위한 영국 상징

입력 2022-09-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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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나이에 2차 대전 대국민 연설
25세 왕위 울라 전쟁 후 국민 통합 나서
15명 영국 총리, 13명 미국 대통령 거쳐
유머러스하고 친절했던 왕으로 기억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7월 15일 메이헤드의 템즈 호스피스를 방문하고 있다. 메이헤드/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7월 15일 메이헤드의 템즈 호스피스를 방문하고 있다. 메이헤드/AP뉴시스
96세 일기로 떠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위를 맡은 인물로 기억된다.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여왕 자리에 오른 그는 70년간 재위하면서 영국 안팎에서 많은 사랑과 존중을 받았다.

14세에 2차대전 국민 연설한 엘리자베스, 전쟁 후 국민통합 이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년 후인 1926년 태어났다. 그는 871년부터 899년까지 재위한 영국 초대 군주 알프레드 대왕의 32대 증손녀였다. 당시 그는 아버지 조지 6세에 이어 왕위를 계승할 자리에 있었다.

여왕이 대중들 앞에 나선 건 생각보다 이른 시점이었다. 아버지 조지 6세가 대관식을 거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 휘말렸다. 그러자 여왕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

▲영국 관광객이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영국 관광객이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2차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0년 여왕의 나이는 고작 14세였지만, 당시 첫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 앞에 섰다. 그는 BBC 라디오를 통해 “결국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며 “평화가 오면 지금의 어린이들인 우리가 내일의 세상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후 조지 6세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여왕은 1952년 2월 6일 25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일부 국가에선 왕위에 오른 자가 국정에 개입해 논란을 빚기도 하지만, 여왕은 재위 기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원칙을 잘 지킨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이어진 격동의 시기에 국민 통합을 주도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4세에 어린아이들을 달랬던 그는 영국 전 국민에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국의 상징으로 서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여왕의 통치 당시 영국은 제국 시대의 끝을 보내고 어지러운 사회 변혁을 겪었으며, 동시에 놀라운 기술 발전과 당혹스러운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다”며 혼란스러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여왕은 15개국 군주이자 53개국으로 이뤄진 영연방 수장, 잉글랜드 국교회 최고 통치자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그는 영국 왕으로서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처음 찾고 50년 만에 인도를 방문했다.

15명의 영국 총리와 13명의 미국 대통령을 거치다

70년이라는 기간 만큼 여왕이 마주한 인사들도 많다. 여왕은 서거 전까지 총 15명의 영국 총리와 대화했고 13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들을 만났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만난 첫 총리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처칠은 케냐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여왕을 직접 활주로에서 맞으면서 왕과 총리로서의 인연을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50년 3월 22일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수상과 인사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50년 3월 22일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수상과 인사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워싱턴포스트(WP)는 “역사가들은 여왕의 아버지를 열렬히 따랐던 처칠이 고인이 왕을 맡기에 너무 미숙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매우 좋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왕은 처칠이 은퇴할 때 편지로 “후계자는 결코 내 첫 총리의 자리를 메꾸지 못할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후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등의 총리들을 거친 여왕은 이달 취임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까지 총 15명의 총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미국 현직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었다. 그가 만난 대통령만 13명이다. 미국과 영국은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다양한 부문에서 오랜 기간 협력했고 그 사이엔 늘 여왕이 있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2003년 11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걷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2003년 11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걷고 있다. 런던/AP뉴시스
특히 여왕은 미국 정권 교체 여부를 떠나 그와 만나는 모든 미국 대통령에게 친절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대통령이 여왕을 만나는 시기는 보통 재임 기간에도 가장 정점에 달했을 때였고, 세계 무대에서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과거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했던 역사가 앨빈 펠젠버그는 “당신(대통령)이 여왕을 집으로 모셔야 정말 성공한 것”이라며 “여왕이 미국을 방문해 양국 사이에 대해 미 국민 앞에서 연설해야 정말 해낸 것이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유머러스하고 상대의 실수에도 은혜롭던 안주인이자 손님

NYT는 여왕을 “70년 동안 상대의 실수나 어색한 행동에 직면했을 때도 은혜롭던 안주인이자 손님”으로 기억했다.

그러면서 미셀 오바마 전 영부인이 여왕을 접견했던 당시 어깨에 팔을 걸쳐 결례 논란이 있던 때를 조명했다. 당시 여왕은 곧바로 자신의 팔로 영부인의 허리를 감싸면서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후 미셸은 "여왕은 형식보다 인간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줬다"고 말했다.

동시에 여왕은 생전 유머러스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한 인물로 기억된다.

과거 그는 스코틀랜드 인근에서 본인을 알아보지 못한 두 명의 미국 관광객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관광객들이 여왕에게 사는 곳을 묻자 “런던”이라며 “밸모럴성에 별장이 있다”고 답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밸모럴성엔 실제로 영국 왕실 별장이 있다.

여왕의 경호원이던 리처드 그리핀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까칠할 순 있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며 “관광객이 내게 사진을 부탁하면 여왕은 그들과 포즈를 취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소식에 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추모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소식에 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추모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여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던 기간엔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불안해하는 국민을 보듬기도 했다.

그는 “우린 함께 맞서고 있으며 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다”며 “앞으로 몇 년 내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도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일 트러스 신임 총리를 밸모럴성으로 초대한 것을 끝으로 자신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한 여왕은 그렇게 전 세계인들의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다. 여왕의 장례식은 18일까지 열흘간 국장으로 열리며 이후 여왕은 윈저성 내 교회 지하에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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