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러한 행태는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것으로 국가자본주의에 해당한다. 국가자본주의란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장을 조종하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전체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는 경우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를 띤다. 미국의 국가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추세에 해당한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기업에 상당한 지원을 한 것도 국가자본주의다. 트럼프 이후 바이든도 중국과의 글로벌 헤게모니 전쟁에서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했다.
국가자본주의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가자본주의는 나치 독일과 소련의 초기 성공의 배경이다. 현대에 들어와 중국의 성공도 국가자본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자본주의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이안 브렘머(Ian Bremmer)는 2009년의 글에서 위기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국가자본주의를 부상시켰다고 진단했다. 출판물에서 특정 용어의 출현 빈도를 분석하는 구글 엔그램(Google Ngram)으로 조회하면, 21세기 이후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출현빈도가 2007년부터 급증하다가 2015년 정점을 찍고 이후 2019년까지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경기후퇴는 국가자본주의를 다시 강화시켰다. 그리고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도 일종의 국가자본주의의 행태로 보아야 한다. 위기는 국가자본주의를 부른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성공을 거둔 이유는 개방형 통상(通商)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자유시장경제는 우리나라 국민과 기업이 가진 역량을 펼칠 수 있게 했다. 세계화와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국가자본주의가 힘을 얻을수록, 우리나라는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올해 4월 이후 연속하여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유가상승만이 이유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국가자본주의 강화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
국가자본주의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안정화되고, 화석연료의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양한 위기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식량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후변화로 경작면적이 줄어들게 되면 산림을 태워 경작면적을 늘릴 것이고, 이는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더불어 주기적인 팬데믹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헤게모니 전쟁도 더욱 격화될 것이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가 국경을 넘어 전파됨에 따라 기축통화 간 전쟁도 첨예하게 불붙을 것이다. 중국과 같은 특정 국가가 국가자본주의를 포기하고 자유시장경제를 택하더라도, 당분간 국가자본주의의 추세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신냉전체계가 아니라 다수의 국가자본주의가 경쟁하는 혼란의 시대가 될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다수의 국가 간 경쟁으로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 21세기 전반기를 채울 가능성이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 대한민국에 가능했던 유일한 전략은 미국과 서방의 편에 서는 것이었다. 이제 그러한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국가자본주의 경쟁의 시대는 우리나라의 외교, 에너지 안보와 식량안보 정책 등에 전환적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 냉전시대에 적군과 아군은 비교적 분명했으나, 이제 국제관계는 휘발적이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그 변화가 가속화되는 뷔카(VUCA)의 세계로 들어섰다.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의 ‘색깔과 향기에 알맞은’ 거대 전략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뷔카에 대응한 미래전략을 세우고 조직 내의 기민성과 적응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사회의 미래가 아무리 보아도 만만치 않다. 신발 끈을 고쳐매야 한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인 공동체 정신을 다시 발휘해야 한다. 전우들 모두 함께 건승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