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정책은 계승과 비판, 새로움의 추구를 통하여 발전한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 국가전략이 외국의 개념을 수입하여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 발전하는 노력 없이 또 다른 개념인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발족하는 방식으로는, 국가전략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일관성과 지속적인 발전의 모범을 보여준다. 인더스트리 4.0은 2006년 8월 독일 연방정부가 발표한 ‘하이테크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출 중심의 제조업 비중이 20%에 달하는 제조 강국인 독일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저성장 및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대내외 환경 변화를 맞게 된다. 이에 독일은 미래 도전과제에 대응하는 연구개발 전략 추진 및 신기술 기반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2006년부터 3차례에 걸쳐 하이테크 전략을 마련하였다.
하이테크 전략은 독일이 취약한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향상시키고, 이를 다른 산업 부문과 결합시켜서 첨단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포괄적 국가전략으로 수립되었다. 이후 하이테크 전략은 2010년 7월에 2차 ‘하이테크 전략 2020’, 2014년 8월에 3차 하이테크 전략인 ‘신(新)하이테크 전략’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16년이 넘은 현재도 독일 정부의 국가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인더스트리 4.0은 하이테크 전략의 일환으로 2011년에 제안되었다. 제조업에 ICT 기술을 접목한 공정기술을 개발하여 소비자 수요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의 여러 산업협회 주도로 연구기관, 공과대학 그리고 관련 분야 관계자로 구성된 워킹 그룹에서 제안했으며, 독일의 부품 및 기계산업의 대기업들이 실질적인 논의를 주도하였다. 이후 인더스트리 4.0은 기업, 노동, 정부가 추진주체로 참여하는 ‘플랫폼 인더스트리 4.0’로 확대 발전되었다. 정부의 전략적 방향을 산업계와 연구계가 받아서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최근 독일이 제안한 인더스트리 4.0을 유럽연합이 계승 발전시켜 ‘인더스트리 5.0’을 제안하였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속에서 유럽 산업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디지털에 의한 자동화와 지능화가 실업의 증가와 인간 노동의 상실을 가져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로봇과 인간이 협력하는 인간 중심의 생산 과정으로 재편하고, 자원과 에너지의 과소비, 생태 파괴 등을 줄여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을 제시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이 디지털화, 특히 사물인터넷 기반의 디지털화를 지향한다면 인더스트리 5.0은 사람·지구·번영을 위한 디지털화를 지향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5.0은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산업에서 탈피하여, 지구환경의 보호를 위한 순환경제를 지향하는 기업과 산업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이 놓친 부분을 다시 돌아보고 급변하는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산업의 역할을 모색하는 산업 비전,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