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는데…” 일왕 생일파티, 굳이 서울서 하는 이유는 [이슈크래커]

입력 2023-02-17 15:09 수정 2023-02-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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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일왕(AP/뉴시스)
▲나루히토 일왕(AP/뉴시스)
16일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서울의 한 호텔에서 나루히토 일왕 생일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2018년 12월 이후 약 5년 만에 재개된 행사입니다. 코로나19로 행사가 중단된 사이 아키히토 전 일왕이 물러나고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했는데요.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 축하연은 이번에 처음 열리는 셈입니다. 2018년까지는 매년 아키히토 전 일왕의 생일인 12월 23일 즈음 열렸지만, 앞으로는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인 2월 23일을 전후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축하연 참석자들이 호텔로 모이는 가운데 몇몇 시민단체 회원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일왕생일축하파티 중단하라”고 적은 현수막을 들고 호텔 앞에서 시위했습니다. 이들은 ‘(호텔이 자리한) 남산 중턱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등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며 소금, 고춧가루 등을 뿌리기도 했죠. 이렇게 반대 여론이 거센데, 일왕 생일파티를 왜 한국에서 여는 걸까요. 일부 시민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해마다 논란, ‘천황 탄생일 리셉션’의 정체는?

일왕 생일 파티의 정식 명칭은 ‘천황 탄생일 리셉션’입니다. 일본은 왕의 생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국내외에서 축하하고 있죠. 왕이 바뀌면 공휴일도 자연스레 바뀝니다. 일본 내에서는 왕족과 총리를 포함한 정치인, 외국 고위 인사 등을 초청해 축하·연회 의식을 거행합니다. 일반인에게 왕궁을 공개하기도 하는데요. 행사를 담당하는 일본 궁내청에 따르면 총 4500명이 참석할 수 있는 생일 행사 현장 참가 추첨에 6만1031명이 응모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습니다. 올해 추첨은 신년 행사보다도 많은 사람이 몰려 12.6:1 경쟁률을 자랑했죠.

국외에서도 일왕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해외 공관은 매년 국왕 생일 행사를 열고 당국 정·재계 주요 인사 및 외교단, 국제기구, 해당 국가 동포 등을 초청하죠. 사실 이는 일본 대사관만 여는 행사는 아닙니다. 각국의 대사관은 매년 자국의 국경일 관련 행사를 통해 자국 문화와 역사를 홍보하고 교류를 도모하는 일종의 외교 활동을 펼치는데요. 일본은 왕의 생일을 기념해 행사를 여는 셈이죠. 일본과 같은 입헌군주국인 영국도 왕의 생일에 대사관에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도 매년 개천절 기념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기모노를 입고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호텔로 들어서는 참석자(연합뉴스)
▲기모노를 입고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호텔로 들어서는 참석자(연합뉴스)
논란 키운 ‘기미가요’…군국주의의 표상?

올해 생일 축하연에서는 한국에서 열린 축하연 중 처음으로 ‘기미가요(君が代)’가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전해져 한층 논란입니다. 기미가요는 1999년 지정된 일본의 국가(國歌)입니다. 메이지(1867~1912) 시대 일왕의 생일 축가로 처음 사용됐다가 태평양 전쟁 때 폐지된 후, 1999년 다시 국가로 지정됐죠.

문제는 기미가요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건데요. 기미가요의 가사가 ‘일왕이 다스리는 세상의 영속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하는 측의 주장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황민화를 위해 조선인에게 하루 한 번 기미가요를 부르게 했다는 사실도 기미가요가 단순한 국가인지 의심을 더하는데요. 일본에서 전범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 황국신민 교육칙어와 함께 기미가요를 부른다는 사실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기미가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일본 교육위원회는 일부 교사가 기미가요 기립 제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직시키거나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징계 처분을 내려 비판받았습니다. 2008년 기립 제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5차례 징계 처분을 받았던 네즈 기미코 교사는 “(기미가요 기립 제창 강요는) 2차 대전 이전 전쟁 중 잘못됐던 군국주의 교육과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일본 극우 매체 산케이 신문은 16일 축하연에서 기미가요를 틀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일본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동안 한국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은 것은) 참석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려해온 것이었지만, 과도한 면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대사관 주최 행사에서 국가 연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이번 기회에 ‘마땅히 부르도록 하겠다’며 한국 국가와 함께 기미가요를 틀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나루히토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단체 활빈단 회원들(뉴시스)
▲나루히토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단체 활빈단 회원들(뉴시스)
매해 반복되는 논란…참석자들에 비판 쏟아져

일왕 생일 축하연에 유독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한국의 아픈 역사 때문입니다. 다만 초대장을 받은 정·재계 유명 인사들 가운데는 ‘한일 관계 우호를 위해’서라며 축하연에 참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외교부에서도 매년 외교 1차관이 축하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통상 양자관계를 담당하는 1차관이 참석하는 게 관례지만, 올해는 조현동 1차관이 미국을 방문 중이어서 2차관이 참석해 축사했죠.

이에 참석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옵니다. 특히 정치인의 축하연 참석은 수차례 논란을 불러왔는데요.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축하연 참석 사실로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2022년 국회 청문회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한 총리는 “역대 무역협회 회장 중에서 유일하게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했다”는 지적을 받았죠. 다만 한 총리는 “과거사로 인해서 우리의 경제나 미래가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무역협회장으로서는 그 행사에 가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고수했습니다.

반면 박 장관은 “중앙일보 대기자로서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역주행을 집중 취재 중이었고 그 대상으로 일본인들이 어떻게 일왕 생일을 다루는지를, 일본의 군국주의 흔적이 계속 작동하는지를 현장 확인하기 위해 갔다”고 반박했는데요. 실제로 축하연 참석 약 한 달 후인 2014년 1월 박 장관은 ‘요시다 쇼인의 그림자 아베의 역사 도발에 어른거린다’라는 대형 르포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두 사람이 축하연에 참석했던 2013년에는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전범을 섬기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일본의 극우 행보가 두드러졌던 탓에 비판이 한층 거셌는데요. 올해도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오가고 있는 만큼, 세간의 지탄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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