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어린이 책이나 청소년용 책을 살펴보는데요, 오늘은 루리 작가의 ‘긴긴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어른용 책이 아니라, 초등학생용 책입니다. 어린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고른 ‘긴긴밤’도 그러합니다.
지은이 루리 작가는 2018년 3월 19일 아침 출근길에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가 어떻게 혼자 남은 존재로 45년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에는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나’가 수없는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구는 이 책을 자연과 동물 보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고, 누구는 사랑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또 누구는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저에게 이 책은 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전안나 읽으라고 쓴 책 같다는 느낌말이죠. 저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살았었고, 입양아동이었고, 아동학대 피해자인 클라이언트였습니다. 노든처럼 나만 혼자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삶을 살았고, 이름 없는 펭귄 ‘나’처럼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로 낯선 사람에게 학대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때는 내가 스스로 잘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나는 누구인지 이름 모를 많은 무명인들의 도움과 연대로 지금까지 살아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펭귄 ‘나’가 얼굴도 모르는 치쿠와 윔보에 의해 알에서 깨어났고, 노든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주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서 살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고아원에 데려다주었기 때문이겠죠. 고아원에서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돈과 노동 때문이겠죠. 어른이 된 지금도 남편과 아이들, 저를 아는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로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든처럼 긴긴밤, 악몽이 찾아오고 이불킥을 하고 싶은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날들이 많았지만,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누군지 모를 노든과 치쿠, 윔보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는 이름 모를 노든과 치쿠, 윔보가 되어주길 바란다는 작은 소감을 적어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의 선한 기능이지 않을까요.
전안나 책글사람 대표,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