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해 보니 매우 건강하네요. 주사 놓을게요.” 아기를 안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는 산후도우미에게 아기를 건네고 진료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료실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엄마를 불렀다.
“저는 마음이 아파서 주사 맞는 것을 못 보겠어요.” 앳되어 보이는 엄마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도 주사 맞을 일 많은데 아기 달래주셔야죠.”
아기 엄마는 울상이 된 얼굴로 버둥대는 아기 팔을 꽉 잡지도 못했다. 아기가 으앙 하고 울자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며 연신 아기를 달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방접종이 엄마 좋자고 맞는 주사인가? 아기 위한 것인데 뭐가 미안하지?’ 하고 속으로 의아했다.
또 언젠가 손주를 데리고 온 한 할머니는 자기 손주를 아프게 할까 봐 처음부터 매서운 눈을 치켜뜨고 감시하듯 접종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주가 울음을 터트리자 “누가 우리 손주 아프게 했어? 의사선생님이 그랬어? 할미가 때찌해 줄게” 하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았다. 주사 맞기 좋은 옷차림부터 안 움직이게 잘 잡는 법까지 모두 숙지했다. 의기양양하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이 진찰을 시작하자 아이 울음이 터졌다.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괜찮아, 괜찮아. 안 아파, 안 아파” 하고 아이를 달랬다. 그때 접종하던 의사선생님이 “안 아프긴 뭐가 안 아파요? 아픈데. 아가, 엄마가 거짓말쟁이네” 하고는 웃으셨다. 나도 머쓱해져 웃음을 지었다.
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