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이 어제 발표한 자료를 보면 8월 중 은행 가계대출은 6조9000억 원 증가했다. 특히 주담대는 7조 원이나 늘어 2020년 2월 7조8000억 원 증가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주담대는 올 초 잠시 감소세를 보이다 3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더니 이젠 한 달 새 7조 원이나 더 부풀어 오를 정도가 됐다. 제동장치가 듣지 않는 폭주 자동차가 따로 없다. 제동장치가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국가 경제의 취약한 고리인 가계부채 문제에 좋게 작용할 까닭이 없다.
주담대 규모가 부푸는 것은 기본적으론 주택 구입을 위해 일반 개별 주담대와 정책모기지를 이용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 탓이다. 정부가 직간접으로 유도한 대출규제 완화와 대출금리 억제정책이 부작용을 빚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연착륙이란 명분이 있다 해도 결국 ‘빚투’, ‘영끌’ 같은 망국적 현상을 다시 부른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요즘엔 생활안정자금 및 기타 용도의 주담대 대출도 많아져 설상가상이라고 한다.
부채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은 역시 부동산이다. 주택가격전망 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61) 이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난 5월 기준점 100을 돌파했다. 8월에는 107까지 올랐다. 1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이 지수가 기준값 100을 넘는다는 것은 1년 후 주택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는 의미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8월 전국 주택 평균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08만1000원 오른 4억4294만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11개월 만의 상승세 전환이다.
국가 경제 체력은 근래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다. 정부와 민간 모두 빚부터 줄여야 한다. 취사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이 치명적인 부담이라도 덜어내야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고 미래에 대비할 여력이 생긴다.
그런데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능가해 국내외 우려를 사는 가계부채 눈덩이가 외려 더 크게 구르고 있다. 133조 원을 넘어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뇌관도 안전하게 제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금융을 관할하는 주요 책임자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추 부총리는 ‘F4’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F4에게 묻게 된다. 대체 가계부채 문제를 어찌 다루기에 일이 이렇게 흘러가나. 말로만 가계부채 걱정을 하는 것인가.
은행채(무보증 AAA등급) 5년물 금리는 미국 국고채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11일 연 4.442%까지 치솟았다. 3월 9일 이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주담대 금리도 상승해 연 7%를 코앞에 두고 있다. 심지어 20대의 주담대 연체율도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 조짐이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국내 가계대출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권고했다. 금융당국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