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기 부진과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어려운 투자 여건이 지속되면서 바이오업계에 대한 투자 열기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부 기업에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위해 일부 파이프라인 임상을 중단하거나, 유상증자 등의 방식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만 10개 이상의 제약·바이오기업이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했다. 대상 기업은 △딥노이드 △메디포스트 △박셀바이오 △퓨쳐메디신 △강스템바이오텍 △에스엘에스바이오 △미코바이오메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유투바이오 △지엘팜텍 등이다.
새로 발행하는 신주를 돈 내고 사는 구조의 유상증자는 발행 주식 수와 회사 자산 모두 증가한다. 주식수만 늘고 자산 변화는 없는 무상증자와 다른 형태다.
제약바이오기업은 투자 위축 상황에서 임상시험 후기 단계 진입에 따른 자금 조달과 재무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수단이라고 밝히지만, 급박한 사정 속에 신속한 자금 조달을 위한 주주 수혈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 시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이번 증자의 경우 대부분 사업의 성장보다는 회사의 생존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돼 시장 반응도 싸늘한 편이다.
신약 파이프라인 임상시험을 중단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부분 바이오기업은 당장 매출이 나올 수 없는 구조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연구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상장폐지 기로에 놓인 셀리버리는 파이프라인 9개 가운데 파킨슨병 및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 치료제, 근긴장성이영양증 치료제 등 주력 파이프라인 3개만 남기고 나머지 6개에 대한 연구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비용 절감 및 경영 효율화를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진원생명과학은 최근 발간한 증권보고서에서 20여 개의 파이프라인 개발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진원생명과학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서 2017년부터 중단한 파이프라인이 모두 포함됐다”며 “코스피 상장사라 파이프라인 R&D 중단에 대한 공시 의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제넥신도 이달 4일 단장 증후군 치료제로 개발 중인 GX-G8 임상 1상 시험을 자진 중단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바이오 분야 투자 위축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바이오·의료벤처에 대한 투자 규모는 596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3159억 원과 비교해 54.7% 감소했다. 특히 정부 투자 규모도 줄었다. 정부가 올해 3월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 활성화 전략 방안’ 발표를 통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 강화 △신약 글로벌 허가 및 본격적인 시장 발매 지원 등으로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를 발굴하겠단 목표를 제시했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 대비 13.9% 줄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은 “코로나를 겪으며 임상 기간이 늘어났고, 환율도 올라가면서 임상 비용이 25% 이상 상승하게 됐다. 이러한 부담을 오롯이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며 “정부가 빠른 시간 내 기업들이 살아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 혁신 기술을 가지고 신약에 도전한 R&D 기반 벤처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정부의 세제혜택, 메가펀드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낄 지원책이 많지 않다. 절실한 시기다. 성공적으로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인 기업들이 후속 투자를 못 받아 임상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움이 필요하다. 가능성 있는 파이프라인이 고사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