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도매업자-소매점 납품가 인하 현실적으로 안돼
정부 "4명 방문 할인가능" 허용에도..."점주들 마케팅 안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곱창전문점 사장 최진배(가명) 씨는 정부의 기준판매비율 도입에 따른 소주값 인하 계획을 묻자, 다소 경악된 목소리로 이같이 되물었다. 이날 기자가 신사동 주변 음식점 5곳을 둘러본 결과, 자영업자 모두 소주 가격을 내릴 계획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업주들은 소줏값을 무턱대고 올리기도 어렵지만 점포 운영비(임대비, 원자재비) 가 매년 오르고 있어, 주류 가격만 내리기는 솔직히 힘들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소비자들의 소주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달 1일부터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했다. 기준판매비율은 소주 출고가 중 판매·관리비 등의 비율을 정하는 것으로, 세금 계산 시 세금부과 기준금액(과세표준)에서 공제하는 등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정부는 기준판매비율 도입으로 주류기업들의 소주 출고가가 낮아지면 도매가와 소매가도 연쇄적으로 인하돼, 소비자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음식점 메뉴판에 적힌 소주 가격은 적게는 5000원, 강남권에서는 6000원~7000원도 일반적이다. 이는 기준판매비율 적용 전인 지난해 연말 가격과 동일하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일선에선 가격 인하 효과가 없는 셈이다.
이처럼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소주값이 내려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업주들은 ‘매장 운영비용’과 ‘변함없는 도매가’를 꼽았다. 닭발음식점을 운영하는 박경수(가명) 씨는 “소주 출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도매업자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소주에 붙는 세금은 내렸지만 출고가도 같이 올렸기 때문에, 줄어든 세수는 정부가 메워주고 결국 주류업체만 배불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도매가가 내려가더라도 소주 가격을 내리긴 어렵다는 업주도 많았다. “비싼 임대료와 나날이 오르는 전기세, 인건비 등 비용을 생각하면 소줏값 인하는 언감생심이나 다름없다”며 “전체 매출에서 주류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기 때문에 현재 가격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소비자들도 소주 가격에 대한 체감도 변화는 작년이나 올해나 변함없다고 했다. 신사동 인근 술집에서 만난 직장인 김승재(가명·30) 씨는 메뉴판을 보고 고개가 내저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새해엔 소주 가격이 내려간다고 들었는데, 술집 메뉴판 가격은 6000원으로 작년과 같았기 때문. 김 씨는 “소맥을 마시려고 소주와 맥주 몇 병만 시키면, 안주 값보다 술값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면서 “식당에서 소주 값이 내려가나 했더니 역시나...안내려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기준판매율 도입과 더불어 소매점, 음식점 등 주류 소매업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주류를 구입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할인판매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도 내놨다. 예컨대, 소주 1병이 5000원인데 4명 이상 방문하면 1병에 4000원 판매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술 할인 판매를 통해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장에서 적용하는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전무했다. 정부에서 별도의 지원 정책을 내놓지 않은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창집 사장 임재인(가명) 씨는 “도매업체가 가격을 내리는 것도 아닌데 소매업자들이 자체적으로 할인 마케팅을 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할인해주는 만큼 제조사가 지원하는 것도 주류법상 불가능하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류제조사 관계자도 “식당에 판매되는 주류 가격은 업주들의 결정 사항”이고 “마케팅 지원을 하는 것은 리베이트에 걸리는 터라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