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장년층 임금금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중장년층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수요 자체가 부족한 데 있으며 이를 야기하는 공공·민간기업의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래야 법적으로 정해진 정년(60세)까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런 내용을 담은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이란 보고서를 20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55~59세 남성 근로자 중 1년 미만 근속자 비중은 2021년 기준 26.8%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다.
이는 우리나라 중장년층 임금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의미한다고 KDI는 설명했다.
또한 우리나라 중장년층 임금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으로 알려진 미국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는 민간부문의 경우 '임의고용' 원칙으로, 고용상 차별만 아니라면 ‘정당한 이유’ 없이도 해고가 가능하다.
KDI는 "미국의 경우 남녀 모두 임금근로자의 중위(중간) 근속연수가 연령과 함께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연령은 증가하면서 1년 이하 근속자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중년 이후로 고용 안정성이 급격히 하락하는 현상이 관찰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령별 중위 근속연수를 보면 남성의 경우 40대 중반 이후 중위 근속연수의 증가가 멈추고 50대부터는 급락, 여성은 30대 중반 이후로 중위 근속연수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차이는 남녀 모두 현재 제도적 최소 정년인 60세 이후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는 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중년 이후로 같은 직장에서 재직하기가 미국에 비해 훨씬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KDI는 설명했다.
KDI "1년 이하 근속자 비중을 보더라도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남성의 경우는 40대 중반, 여성의 경우는 30대 중반 이후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중년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기존 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길 가능성, 즉 고용 불안정성이 증가함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KDI는 우리나라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의 표면적인 이유로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 증가를 꼽았다.
임금근로자 중 정규직으로 재직하고 있는 경우만으로 한정할 경우 중년 이후 1년 이하 근속자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이 적어도 60세 이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기간제, 파견직 등 근속연수가 짧은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근로자 연령과 함께 빠르게 증가했다. 중년 이후로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을 의미하는 임시고용 비중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55~64세 근로자의 임시고용 비중은 단연 최고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고용 근로자의 비중은 남자 33.2%, 여자 35.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남자 8.2%·여자 9.0%)을 크게 웃돌며 2위인 일본과도 10%포인트(p) 이상 격차를 보인다.
KDI는 중년 이후 나타나는 고용 불안정성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장년층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수요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일자리에서 이탈하면 다시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가 어려워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대비 정규고용 비중은 55~64세 남성은 32.2%, 25~54세 여성은 43.1%로 OECD 평균(각각 47.2%·50.3%)를 크게 밑돈다.
KDI는 "우리나라 중장년 노동시장에서는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고, 저임금·저숙련 일자리 외의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런 현상은 정규직 임금의 경직성, 특히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증가가 매우 가파라지는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상승이 높아질수록 기업들이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려는 경향이 커진다는 얘기다.
KDI는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보다는 60세인 정년까지의 재직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제도 및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고령층 인구(55~79세)가 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은 49.4세로 나타났다. 정년퇴직 연령인 60세에도 한참을 못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30.2%는 사업부진, 조업중단, 휴·폐업 이유로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11.3%)까지 포함하면 10명 중 4명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것이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법적 강제에 의해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대되는 효과성은 미미하고, 청년고용 감소, 여성인력 조기 퇴직 등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제도적 힘보다는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을 확대해 정년까지의 재직 비중을 높이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토대로 정년의 추가적 연장도 한층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핵심 과제로는 대기업 및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규직 임금의 연공성 완화를 제시했다.
한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한데 공공부문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정 기간(예: 경력 10)년 이후로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상승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상승이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고 과정의 예측 가능성 제고, 비정규직 보호 및 고용 안전망의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