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보험료율 인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여·야도 21대 국회에서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데까진 의견이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합의된 수준에서 보험료율을 먼저 인상해 ‘급한 불부터’ 끄자고 조언한다.
6일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을 먼저 세팅하면 거기에 맞춰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연계·조정할 수 있다. 모든 논의를 동시에 할 필요가 없다”며 “정 합의가 안 되면 보험료율을 1~2%포인트(P)라도 인상해 다른 것들을 논의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여당은 국민연금 기여율·지급률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이 아닌 연금체계 전반을 연계·조정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자고 한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 기여율·지급률 조정뿐 아니라 기초연금 지급범위와 수준 조정, 퇴직·주택연금 개편, 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직역연금 통합까지 아우르는 거시적 개혁이다. 논의를 시작해도 단기간에 합의된 결론을 내기 어렵다. 특히 1~2년마다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로 논의가 중단·지연되면 개혁 동력도 힘을 잃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모수·구조개혁의 가치가 서로 상반되는 게 아니다”라며 “구조개혁을 위해 모수개혁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6년째 9%로 고정돼 있다. 과거에는 ‘인상 폭’보다는 ‘인상 자체’가 부담이었다. 다른 논의를 다소 미뤄도 보험료율을 소폭이라도 인상하면 개혁 동력이 이어질 수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재정 안정화가 시급하니 보험료율이 두 자릿수는 돌파해야 한다. 단 1%P만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료율을 12% 이상으로 인상하면 기금 소진 시기가 8년 이상 미뤄진다. 소득대체율 논쟁을 정리하고, 이에 맞춰 기초연금 지급범위·수준까지 조정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단기적으로 모수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여당의 의지가 필수적이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시간을 더 끌면 개혁을 못 한다. 정부가 단일안을 내기 어려우면 2~3개 선택지 정도는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국회에서 합의해 결론을 내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부 안을 중심으로 국회가 논의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가 안을 내놓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성과를 내려면 지지도 하락을 감수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현재 민주당은 연금개혁을 바라면서도 지지기반인 노동·시민단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정부 안을 수용하더라도 한동안 소득대체율 상향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정부·여당도 이 점을 부담스러워 한다. 김정식 교수는 “개혁을 하려면 좋든 싫든 야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보험료율이 인상돼도 연금개혁 완수까진 갈 길이 멀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연계해 기초연금 지급범위·수준을 조정해야 하고, 이후에는 퇴직·주택연금과 직역연금까지 의제를 확대해야 한다. 계속고용제도 도입 등 노동개혁과의 연계도 필요하다.
향후 구조개혁 논의에선 논의구조 개편이 요구된다. 21대 국회처럼 양 진영이 소득 보장파를 대표하는 전문가, 재정 안정파를 대표하는 전문가를 각각 앞세운 논의구조에선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21대 국회는 1년 10개월간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연금특위)를 운영했으나, 연금특위는 소득대체율 논쟁에 매몰돼 실질적인 재정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했다. 연금특위가 남긴 결과물이라고는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가 전부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당이 각자 전문가를 추천하는 방식보다는 학계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을 통해 개혁안을 논의하는 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의 논의방식은 비생산적”이라며 “지난 20년간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주제를 놓고 싸웠다. 이제는 전문가 풀의 세대교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