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BI 불발 악재 덜었지만…반도체·자동차 고환율 수혜 기업 ‘덜덜’ [2024 국채의 해 ④]

입력 2024-10-10 15:30 수정 2024-10-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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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항구 (연합뉴스)
▲수출 항구 (연합뉴스)
한국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결정은 채권시장에 분명한 호재다. 그러나 고환율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국내 수출 대기업에게는 다른 이야기다. 편입으로 인한 환율 안정 효과가 반대로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기업의 이익 개선에는 비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상위 수출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최근 반도체 겨울, 외국인 대규모 순매도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국내 증시 투자심리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2시 26분 서울 외환시장에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30원 오른 1350.30원에 거래 중이다. 전날 한국은 공매도 금지 탓에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로 강등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깨고 글로벌 3대 채권지수인 WGBI 편입에 성공했다. 이러한 소식은 원·달러 환율 수급에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고, 원화 시장은 호재로 반응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일 역외시장에서 10원 넘게 급락했고, 원화는 주요 통화 약세에도 강세로 움직였다.

WGBI 편입에 따른 원화 절상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국채에 투자하려는 70~80조 원의 해외 자금이 안정적으로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 외환시장 유동성이 개선되고, 환율 안정 효과가 발생한다. 원화는 이달 들어 변동폭과 변동률 모두 완화하는 추세다. 원·달러 환율 변동폭은 8월 5.8원에서 9월 4.8원으로, 변동률은 0.43%에서 0.36%로 0.07%p 축소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내려가면 원화 환산 수익도 낮아진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할 경우 단기적으로 수출은 0.5%, 수입은 0.7% 감소하지만, 중기적으로 수출 0.5% 증가, 수입은 0.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급등이 반도체와 IT, 자동차, 기계 등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률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동력인 이유다.

지난 4월 140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10월 현재 1300원 초·중반대로 내려온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당초 WGBI 편입이 불발되면 4분기 환율이 1300원 후반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번 WGBI 편입으로 향후 1200원 후반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원화 강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내 대기업의 이익 개선에 부정적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각각 88%, 94%를 차지한다.

한국투자증권은 “메모리 반도체는 특성상 매출원가에서 고정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원재료비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으므로 환율 상승에 따르면 재료비 증가분 이상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늘어난다”며 “내수 대비 수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본사와 해외 법인, 고객 간 거래 시 모두 달러로 결제된다”고 말했다.

물론 외환과 수출 기업의 주가가 절대적으로 역의 상관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최근 국내 증시의 허리인 반도체 업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올 3분기에 시장의 기대를 크게 밑도는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DS) 사업이 부진했던 탓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9월 미국 현지 판매량도 1년 전보다 각각 9%, 12%씩 감소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WGBI 가입이 긍정적인 건 국채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고, 회사채는 다른 상황”이라며 “국채 기대감으로 운용사, 보험사 등이 국채 투자 비중을 늘리면 회사채 시장에 수급적으로 불리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구축 효과로 회사채 금리가 약세를 보이면 기업 재무구조에 악영향일 뿐 아니라, 실적과 주가에도 부정적”이라고 짚었다.

이어 “최근 삼성전자 위기론이 나오고 국내 내수가 너무 안 좋은 상황에서 환율 안정은 도리어 기업 펀더멘털과 신용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국채금리 안정으로 회사채 금리 연동을 기대할 수 있지만, 기존에 발행했던 기업들은 여전히 고금리에 국내 기업 업황이 우호적이지 않아 향후 국채와 회사채 간의 차별화 양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의 국내 반도체 이탈은 두드러지는 추세다. 9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7조921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그러나 이를 삼성전자 한 종목으로 좁혀보면 외국인은 삼성전자 단일 종목 하나에서만 8조621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실적은 순매수였다는 의미다.

반도체 시가총액 비중이 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의 반도체 순매도는 국내 증시의 추가적인 하락을 부를 수 있다는 악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지난 8일 53.46%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6만 원 선을 밑돌며 또다시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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