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통해 우리는 강직한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물리쳤던 근엄한 장군이기 전에 그도 효심 가득한 자식이었으며, 자식이 잘못될까 노심초사했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이 일기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이 같은 작품성으로 '난중일기'는 국보는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정약용의 일기는 어떨까. 한양대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국내 최초로 정약용의 일기 4편인 '금정일록(金井日錄)', '죽란일기(竹欄日記)', '규영일기(奎瀛日記)', '함주일록(含珠日錄)'을 완역해 해제를 달아 출간했다. 저자에 따르면, 다산의 일기는 내밀하고 주관적인 독백이 아닌 건조한 사실로 가득하다. 무심한 듯이 기록한 그의 일상 속 사실을 역사 속 사실과 겹쳐 읽어야 맥락이 분명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반전과 평화, 인류애 등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구축하기. 미야자키 감독이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에서부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천착한 주제들이다. 특히 이 책은 애니미즘(Animism)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만물에 우주와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인 애니미즘은 어쩌면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미야자키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들을 '자기 안에 내재한 무궁무진한 능력을 힘껏 꺼내어 쓰는 자'라고 명명한다. 이어 "미야자키는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용감히 운명을 향해 돌진하는 모험가의 생명력을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캐릭터들은 '인간'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물이기도 하고, 괴물의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생맹력을 가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이라는 점이다.
흔히 젠더(gender)는 사회적 성(性)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젠더가 생물학적 차원이 성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을 통해 이 같은 통념에 반기를 든다. 그에 따르면, 젠더는 시간에 맞춰 희미하게 구성되고, 양식화된 행위의 반복을 통해 외부공간에 제도화되는 정체성이다. 이처럼 그는 성별과 젠더의 이분법적인 틀을 허물면서 기존 페미니즘 담론에 유의미한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은 2008년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후 젠더와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널리 읽혔다. 하지만 복잡한 개념과 다소 난해한 주디스 버틀러의 문체로 인해 일반 대중들이 읽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16년 만에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선보이는 이번 개역판은 기존의 번역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오역을 바로잡았다. 개념어와 용어의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어도 대폭 다듬어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독해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