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응원봉'으로…이색적인 시위 문화 눈길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참여정치 문화 도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사태 여파로 문화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한국 문화가 날개를 달고 상승하는 와중에 계엄 사태가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K팝을 틀고, 응원봉을 흔드는 2030세대의 이색적 시위 문화가 조명받으면서 실추된 국격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10일(현지시간) 한 작가는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인 성취이지만, 시상식 전에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한 작가에게 쏟아진 첫 질문은 그의 문학이 아닌 한국의 계엄 사태였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서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했는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言路)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통해 폭압적인 국가 폭력에 맞선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표현했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내려진 비상 계엄령을 배경으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독재 정권의 잔혹함과 인간의 연약한 삶을 담은 작품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로부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떠났을 때, 윤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라며 "세계인이 한국 문학을 주목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찬물을 확 끼얹은 거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라고 전했다.
세계인들이 열광한 글로벌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 역시 전날 시즌2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참담함을 드러냈다.
황 감독은 어두운 표정으로 "엊그제 탄핵 투표도 생중계로 계속 지켜봤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온 국민이 거리로 나갔다"라며 "불안과 공포와 우울감을 가지고 연말을 보내야 한다는 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행하고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이든 하야든 최대한 빨리 책임질 분이 책임지라"며 "조속히 이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봉준호, 박찬욱, 변영주, 문소리, 조현철 등 수많은 영화인과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내란죄 현행범 윤석열을 파면, 구속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관련자들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응원봉을 흔들고, K팝을 틀며 평화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2030세대의 건전하고 이색적인 시위 문화가 세계인들의 조명을 받으면서 실추된 국격을 회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해제한 다음 날, 2030세대를 포함한 시민들은 국회에 모여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과거에는 화염병 투척 등 다소 난폭한 방식의 시위 문화가 존재했었다. 총칼로 위협하는 독재 정권의 시위 진압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화염병은 '촛불'로 변했다. 어둡고 어지러운 시국에 부패한 권력자들이 시민들이 든 촛불을 바라보고 각성하라는 의미다. '아침 이슬'과 '상록수' 등의 노래와 촛불 집회는 평화적 시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촛불은 응원봉으로, 장엄한 느낌의 노래들은 흥겨운 K팝으로 변했다. 응원봉은 한국 아이돌 문화의 상징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내가 가진 가장 밝고 빛나는 도구로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응원봉이 나라를 지키고자 거리로 나온 젊은 세대들의 시위 도구가 되면서 그 의미가 한층 더 깊어졌다.
이지혜 문화평론가는 "MZ세대의 응원봉 시위에 민주화 운동 및 촛불 시위 등으로 광장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화답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자녀들과 함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시위 현장에서 최신 K팝을 배우는 등의 화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이렇게 돌파구를 찾아 나가는 국민의 우수성을 다시금 평가해봐도 좋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외면했던 청년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안전하게 향유하게 위해 시위 현장으로 나서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정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