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이 16일(현지시간) 1000억 달러(약 143조6000억 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손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을 찾아 면담하고 기자회견을 해 투자 규모를 공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역사적인 투자”라며 “미국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규모는 2016년 트럼프 1기 때의 2배다. 향후 4년간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에 집중 투입된다. 트럼프는 “최소 10만 개의 미국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투자액을 2000억 달러로 늘려줄 수 있느냐”고 물어 “노력하겠다”는 즉흥적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트럼프 장이 섰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돈과 사람이 모이고 있다. 손 회장만이 아니다.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눈도장을 찍기 위한 글로벌 기업인 행렬이 이어져 트럼프 자택은 문전성시다. 트럼프는 “다른 많은 사람도 엄청난 돈을 갖고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오고 있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다. 트럼프는 앞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팀 쿡 애플 CEO, 세르게이 브린 알파벳 공동창업자를 만났다. 이번 주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 등을 만난다.
각국 정상들도 줄서기에 바쁘다. 관세를 무기로 세계 무역·안보 질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미국과 공생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미 회동했다. 과시욕 강한 트럼프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취임식 초대장을 뿌리고 있다. 고율 관세의 주된 표적인 중국에도 뿌렸다. 백악관 대변인으로 지명된 캐롤라인 래빗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을 취임식에 초청했다고 밝히면서 참석 여부는 “추후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장이 섰다고 해서 아무나 만나주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트럼프와 독대할 기회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거절을 당했다. 반면 트럼프는 15일 멜라니아 여사와 친분이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를 마러라고에 초청해 저녁 식사를 했다. 세 사람이 함께한 기념사진은 세계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이시바 총리와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그들이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조건 없이 만나준다는 얘기로는 들리지 않는다. 이시바로선 뭘 준비해야 회동이 가능하고, 미일 관계가 순항할지 수읽기를 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
트럼프 자택은 문전성시인데 한국 정부·국회 관계자가 줄서기 대열에 섰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인접국인 일본 정부는 우회적인 압박이라도 받고 있고 전 총리 부인이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한국은 이번 장에서 존재감조차 찾을 수 없다. 경제·무역만이 아니다. 국가안보도 걱정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냈고, ‘머니 머신’이란 소리를 듣던 국가가 소리소문없이 증발한 모양새가 됐다. 기가 찰 노릇이다.